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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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는 강하고 단호했다. 테니스 메이저대회인 프랑스오픈 기간 중 세계랭킹 2위 오사카 나오미(24·일본)는 지난 1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인스타그램에서 “잠시 휴식기를 갖겠다”는 깜짝 선언을 하며 프랑스오픈 2회전 기권을 선언했다. 언론과의 인터뷰 거부로 프랑스오픈 조직위에 의해 1만 5천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은 뒤 하루 만에 나온 것이다. 대회 조직위는 만약 언론 인터뷰를 계속 거부하면 프랑스 오픈은 물론 윔블던, US오픈, 호주 오픈 등 모든 메이저대회에서도 실격으로 처리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던 터였다.

오사카는 1회전에서 파트리치아 마리아 치그(세계랭킹 63위·루마니아)를 2-0으로 완파하고 아나 보그단(102위·루마니아)과의 2회전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내가 며칠 전 생각하거나 상상하지 못한 상황이 됐다. 나와 대회, 그리고 모든 선수들을 위해 최선의 방법은 경기에서 물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기권 이유를 밝혔다. 이어 “2018년 US오픈이후 우울증 증세로 힘들었다. 내가 내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알고 있다.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인터뷰 불참계획을 알렸던 것”이라며 “내가 헤드폰을 자주 끼고 다니는 것은 사회적 활동에 대한 우울증을 줄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며 개인적 습성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오사카의 기권 발표가 나오자 프랑스오픈 등 메이저대회 관계자들은 강경한 자세를 취했던 며칠 전의 방침과 다르게 동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신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그가 빨리 회복하기를 바라며 여러 선수들의 경험과 노력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또 지위나 순위에 관계없이 모든 선수들은 불공평한 대우를 받지 않으며 규칙에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보기 드문 통합의 자세를 보였던 것이다.

사실 메이저대회와 오사카의 이번 논란은 최근 위기를 맞은 세계 테니스계의 어려움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지난 수년간 메이저대회는 세계 주요 언론들의 보도가 점차 줄어들면서 팬들로부터 관심이 식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홍보와 광고를 위한 목적으로 참여했던 스폰서들이 줄어든 메이저대회는 수억 달러의 손실을 감내해야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세계적인 확산으로 인해 재정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메이저대회 조직위가 오사카의 인터뷰 거부에 강경한 조처로 대등했던 것은 자칫하면 스타플레이어들의 미디어 노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오사카 같은 세계적인 스타가 인터뷰를 거부하고 미디어에 자주 나오지 않으면 미디어 효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줘 스폰서 가치를 떨어트릴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스폰서들은 오사카를 비롯 세레나 윌리엄스,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노박 조코비치 등 걸출한 세계적 스타들이 기자회견을 할 때 수백만 달러를 지급하고 배너나 음료수 병에 브랜드를 알리 기회를 갖는다. 이런 스타들의 기자회견 등을 갖지 못하면 메이저대회들은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비단 오사카의 개인적인 성격으로 인해 빚어진 이번 인터뷰 거부 사태는 메이저대회의 미디어 노출 운영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드러나게 했다. 메이저대회가 선수들이 원하지 않는 미디어 노출을 강요하며 수익을 올리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낳게 한 것이다.

프로스포츠는 미디어와의 공생을 통해 대중들과의 접전을 만들며 수익을 창출하는 생태계의 특징을 갖고 있다. 선수, 미디어, 프로스포츠, 스폰서, 팬들이 선순환적으로 연결돼야 모양새가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개인의 인권을 무시하면서 수익만을 쫓다보면 앞으로 제2, 제3의 오사카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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