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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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MBC ‘아무튼 출근’이라는 프로그램에 초등학교 1학년 교사의 근무 모습이 방영됐다. 방송 내내 해당 학급의 아이들이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이름까지 공개되는 걸 보며 걱정이 됐다. 방송 전에 부모들에게 동의를 다 구했다고 하겠지만, 다수의 부모와 아이가 영상에 찍히는 걸 찬성하는데 혼자 유별나게 반대하기도 힘들어 내키지 않아도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을 거 같다. 모자이크도 없이 모든 학생의 얼굴을 방송에 내보내는 건 엄밀히 따지면 담임의 지위를 활용한 심각한 초상권 침해다.

최근 들어 유튜브에 교사들의 브이로그(일상을 동영상 형식으로 촬영한 콘텐츠)가 점점 증가하며 학생들의 초상권과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급기야 교사의 브이로그를 금지해달라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청원인이 제기한 글을 보면 ‘요즘 학교에서 교사들이 브이로그를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 영상들을 보면 학생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변조하지 않거나 모자이크를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아이의 실명을 공개하는 상황도 잦다. 아이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악플이 난립하는 온라인에 학생들이 공개되는 것은 위험하고 이를 악용해 범죄에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브이로그에는 “돌았네” “지X하네”라는 등의 욕설이 자막으로 나오기도 한다. 학부모에게 일부 동의를 얻는다고 하지만 수시 전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사의 요구에 동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생활기록부에 악영향이 생길까 두려워 침묵할 수밖에 없다’라고 쓰여 있어 충분히 공감이 간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교사 유튜브 채널이 2500여건에 달한다. 교사란 직책으로 국가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이 직책을 다른 돈벌이에 이용하는 건 엄연히 겸직규정 위반이다. 교육부가 만든 교원 유튜브 활동 복무지침에는 ‘학생이 등장하는 영상을 제작하는 경우, 학생 본인 및 보호자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하며, 학교장은 제작 목적, 사전 동의 여부, 내용의 적절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촬영 허가를 결정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이 지침대로 교사들이 브이로그마다 일일이 사전 동의를 받고 학교장의 허가를 받았다고 보기 힘들다.

상위법인 국가공무원법 제64조 겸직규정에는 ‘공무원은 공무 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소속 기관장의 허가 없이 다른 직무를 겸할 수 없다’라고 명시돼 있다. 학생지도나 수업에 들여야 할 노력과 시간을 사익을 목적으로 한 브이로그에 들이는 행위는 잘못이다. 자신이 강의 모습을 올리는 건 상관없지만 학생들의 모습을 촬영해 조회수 올리는 건 공무가 아닌 영리 목적이 커 겸직 허가를 내줘서는 안 되는 행위다.

필자도 영상을 편집해봐서 알지만, 영상 편집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 채널 관리에 노력과 시간을 쓰다 보면 업무와 수업에 소홀해져 동료 교사나 학생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채널의 인기와 돈벌이에 교사란 직업과 아이들을 보조수단으로 함부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교사의 브이로그를 보면 일부러 아이들을 희화화해 조회수 올리려고 경쟁하기도 한다. 학생의 개인정보는 아랑곳없이 사익을 우선하는 건 교사의 직업윤리에 맞지 않는다.

요즘은 보호장치 없이 노출된 개인의 영상이 딥페이크(얼굴이나, 특정한 부위를 영화의 CG 처리처럼 합성한 영상편집물)나 소아성애자들의 범죄에 활용되는 경우도 많다. 교사들은 초상권, 개인정보를 이유로 졸업앨범, 학교홈페이지에서 교사의 사진마저 빼면서 아이들의 영상은 아무런 제지 없이 전 세계인이 보는 유튜브에서 돌아다니는 게 하는 건 옳지 않다. 교사 채널의 주 촬영장소가 교실, 교무실이라 동료 교사나 학생이 본인의 동의 없이 영상에 등장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생길 수밖에 없다.

2년째 등교가 파행을 겪으며 온라인 수업이 병행되고 있다. 작년까지는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서 못 했다고 이해해도, 올해마저 자신이 수업하는 영상을 올리지 않는 교사는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이 안 된다. 유튜브에 기울일 열정과 노력을 온라인 수업의 질 향상에 써야 한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싶다면 퇴근 후 자신의 일상생활을 찍어 올리면 된다. 진짜 학생을 위하고 수업을 위해 애쓰는 교사라면 브이로그를 할 시간조차 없다. 학교는 유튜브 스튜디오가 아닌 교사와 학생이 사생활을 존중받으며 근무와 학습을 하는 공간이고 직장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익 목적이 아닌 사익을 위해 학교 내 시설을 이용할 수 없도록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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