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호 소설가

 

자,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최근의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야겠다. 얼마 전에 안마를 받으려고 어떤 남자가 찾아왔는데, 그는 아주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몸에 손을 대보니 모든 근육이 두부처럼 흐물흐물하게 느껴졌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근육이 뭉쳐 있기는커녕 사람의 몸이 연체동물처럼 이렇게 물렁해질 수가 있다니! 만일 살 속에 뼈가 없다면 그의 몸은 바닥에 굴려서 칼국수 반죽처럼 둘둘 말아도 될 성싶었다.

내 영험한 손바닥으로서도 도저히 그 원인을 예측할 수 없는 경우였다. 이거야 원. 나는 감이 잡히지 않자 몹시 당황했다. 자칫 잘못 만졌다가는 육탈이 되듯 뼈에서 살이 떨어져나가 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나는 그의 몸에 손바닥을 올려놓기만 한 채 짐짓 말을 붙여보지 않을 수 없었다.

“뭉친 데라고는 하나도 없는, 오히려 만지면 뭉개질 것 같은 부드러운 몸인데, 굳이 안마를 받을 필요성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러자 그가 곧 바로 대답했다.
“이게 다 지진파 때문이랍니다. 물론 파장의 강도에 따라 물렁거리는 정도가 달라지지만 어쨌든 지진파가 감지되면 내 몸은 이처럼 ‘젤’화가 되어버리지 뭡니까. 근육과 살이 모두 말랑말랑해져버리는 거죠.”
세상에, 이런 기막힌 일도 다 있다니. 그의 말에 의하면 이런 반응이 온 것은 피부이식을 받은 이후 생겨난 현상이란다.

그는 몸통에 지독한 화상을 입어 피부이식수술을 다섯 차례나 받았대나 어쨌다나. 그러니까 그의 말을 다시 정리하면, 피부이식을 받은 뒤부터 그는 지진파에 아주 민감해져 파장을 감지하게 되면 그 강도에 비례해 그의 근육과 살은 물컹거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게 바로 두어 달 전의 일이 아닌가.

“나는 요즘 아주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답니다. 최악의 일본 지진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강한 지진파가 느껴지니까요. 어쨌든 이렇게 ‘젤’화가 일어났을 때 온몸을 잘 주물러주면 근육이 원래상태대로 빨리 굳어지지 뭡니까. 보통사람들은 안마를 받음으로써 뭉친 부분을 풀어주고 근육을 이완시키는 것과는 정 반대로 말이죠.”

나는 그의 사정을 알게 되자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참 별난 경우도 다 있다 싶어서였다. 하긴 뭐 하고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만큼 우리가 이해 못 할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 만은. 우선 내 손만 하더라도 이런 사례에 해당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겠는가. 하여튼 그날 나는 그의 몸을 아주 비싼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스럽게 만져 물컹거리는 근육을 간신히 단단하게 되돌려놓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몸이 ‘소우주’라는 말은 아주 적절한 표현이며 기막힌 비유라고. 또한 그런 우주 속에서 더러 신의 존재만큼이나 불가사의하고 신비스런 현상이 생긴다고 한들 하등 이상할 건 없다고 말이다. 한데,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또 그의 몸이 나를 찾아왔을 때보다도 더 파김치가 되는 어느 날, 안전지대라는 우리 한반도에도 정말 큰 지진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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