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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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판소리. 양대 산맥이라고 불리는 심청가와 춘향가의 감동은 클라이막스에 있다. 춘향가는 어사또가 돼 몰래 남원에 잠입한 이도령이 출두해 탐관오리 변학도를 봉고파직하고 잔치에 참석한 양반 부류들을 혼쭐내는 장면이 제일 통쾌하다.

심청가의 감동도 마지막 대목이다. 황성 맹인잔치에 참석한 심학규가 꿈에도 못 잊는 딸 심청을 만나 눈을 뜨는 장면이다.

기구한 운명에 통곡하던 심학규는 딸을 보려고 눈을 끔쩍거리다 광명을 찾는다. 관객들은 눈물을 쏟으면서도 박수를 친다.

지난해 7월 첫 개봉에 이어 지난 주 재개봉된 조정래 감독의 ‘소리꾼’은 이 두 테마를 한 영화에 농축시켜 감동을 유발시켰다. 사리사욕에 눈먼 포악한 관리들이 개재된 인신매매조직에 납치돼 고난을 당하는 민초들의 아픔을 그렸다.

감독은 주인공 청이를 심청가의 청이로 오버랩 시켜 눈물샘을 자극한다. 납치 된 엄마를 찾아 전국을 유랑하며 소리꾼이 된 가족에게 개성이 독특한 유랑인들이 합류해 장기를 발휘하는 것도 재미있다.

노복에게까지 놀림을 받는 가난한 선비(김동완 분)는 숨겨놓은 복선이었다. 이들의 티격태격하는 일탈도 재미를 더한다.

선비는 연회석에 나타나 시 한수를 지어 던지고는 밖으로 나간다. 춘향가에 나오는 ‘금준미주 천인혈 옥반가효는 민생고’라는 시를 등장시켰다. 많이 알려진 시지만 그래도 통쾌하다. 그가 암행어사로 등장해 죽음 직전의 고난에 빠져있는 억울한 백성들을 모두 구해 주는 구세주로 돌변하는 것이다.

이들이 죽음의 문턱을 넘고 있을 때 심청가의 마지막 마당이 불려진다.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소리다. 판소리를 자주 듣지 않는 일반인들은 더욱 감동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게다. 판소리 고수(鼓手)로 알려진 조감독의 연출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 영화는 남북에서 동시에 촬영해 북한의 일부 명승을 담기도 했다. 감독은 관객들에게 시사회 전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좌석을 지켜 줄 것을 당부했다. 바로 북한영화인들과 만나는 장면과 묘향산등 절경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핵 문제로 다시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한반도. 감독은 우리 소리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우리 가슴속에 자리 잡은 소리야 말로 하나라는 것을 호소하는 것이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이후 판소리 영화는 처음대하는 것 같다. 조선 천재 화가 오원 장승업을 그린 취화선에도 흥타령이나 판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소리꾼의 고난스러운 삶과 다양한 소리를 전편에 농도 있게 그린 작품은 영화 소리꾼이 처음인 것 같다.

오늘날 국악이 대중화되고 많은 마니아가 생겼지만 전문 국악인들의 마당은 열악하기만 하다. 예술 공연계가 모두 그렇지만 코로나 만연 이후에는 설 자리마저 없다고 한다.

아리랑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판소리는 세계의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판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도 더 나왔으면 한다. 문화재청이 판소리 대사도 위촉해 외국 수출 길도 북돋아 줘야 한다.

사극영화가 탄생되는 것은 일반 영화보다 더욱 힘들다. 출연인원이 많고 제작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데는 사극영화만큼 좋은 소재도 없다. 한국의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는 영화 소재로 삼을 만한 사건들이 많다.

민족의 자존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감동적인 소재를 찾아야 한다. 북채를 잡는 고수 조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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