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화재 제64호 박문열 두석장이 지난 18일 장석공방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5.28
[천지일보 경기=이성애 기자] 인간문화재 제64호 박문열 두석장이 지난 18일 장석공방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5.28

 [인터뷰] 인간문화재 제64호 박문열 두석장(豆錫匠)

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 장인(匠人)

특별한 것 고집, 자물쇠 인생

“우리나라 전통문화 보존되길”

모든 일에 끈기·인내심 강조

[천지일보 경기=이성애 기자] “15살 때부터 먹고 살기 위해 공장을 전전하다 60년 넘게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쇳물 녹이는 작업부터 시작해 1968년 인사동에서 본 작업을 시작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죠, 특별한 것 만들기를 고집했고 인내심을 가지고 한 우물을 파다 보니 중요무형문화재 21년 보유 두석장이 됐습니다.”

구리와 주석을 합금한 황동 혹은 놋쇠를 망치로 두들겨 장석(裝錫)물을 만드는 박문열(73) 두석장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이어 “1970~1980년대는 정말 힘든 세월이었다.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가 일본 영국 등 외국으로 팔려 나갔다”면서 “90년대 이후 우리 문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알게 돼 사정이 옛날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어느 스님이 지어주신 호 心耕(심경)의 뜻대로 부단히 마음의 밭을 갈며 복된 삶을 염원하는 장석을 만드는 장인이 됐다”며 “오랜 세월 가난하게 살았지만 한 번도 전통 공예 장인으로서의 삶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문열 선생의 흉상. (사진: 송미라) ⓒ천지일보 2021.5.28
[천지일보 경기=송미라 기자] 박문열 선생의 흉상. ⓒ천지일보 2021.5.28

끈질긴 집념이 만든 이름 ‘두석장’

두석장(豆錫匠)이란 목제품을 비롯한 각종 가구에 덧대는 금속장식(裝錫 혹은 金具)을 만드는 일 및 그 일에 종사하는 장인(匠人)을 일컫는다. 시우쇠·놋쇠·백통 등을 써서 돌쩌귀·경첩·문고리·거멀쇠·감잡이·철엽·자물쇠 등을 만든다.

박문열 장인은 “목가구를 만들 때 소목장과 두석장은 바늘과 실의 관계로 소목장은 두석장에게 제작을 의뢰한다”며 “소목, 옻칠, 나전칠기, 장석물 4장인이 작품을 완성한다”고 말했다.

박 두석장은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 1987년부터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했으나 계속 낙선 아니면 입선 정도였다. 그것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평범한 건 거부 했다. 특이한 것, 얼이 담긴 것을 재현시키기 위해 특별한 장석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는 “차비도 없는 시절, 60년대 인사동에서 본 비밀 자물쇠를 기억하고 진주 태정민속박물관 김창두 선생을 찾았다”며 “당시 선생은 사진 촬영도 자물쇠의 구조를 그리는 것을 허락지 않아 약 10분 동안 자물쇠를 눈으로만 보게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들여다보면서 머릿속에 담아둔 설계도를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급히 종이에 그려 서울로 올라왔다”며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가건물에서 완성할 때까지 집에 안 간다는 작심을 하고 작업을 시작한 1주일 만에 그 중요한 실마리를 찾아내어 자물쇠 7단을 뽑아내고 17가지 자물쇠를 만들어 냈다”고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특별한 비밀자물쇠로 1993년도 전승공예대전 출품에서 장관상을 받았다. 그때부터 그의 자물쇠 인생의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심경장석공방. ⓒ천지일보 2021.5.28
[천지일보 경기=송미라 기자] 심경장석공방 중요무형문화재 64호 입간판. ⓒ천지일보 2021.5.28

미술에 소질 있던 어린 시절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박문열 선생은 수업이 끝나면 밖에 나가 돌멩이를 조각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5살 때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주물공장에서 일하면서 주물기법을 익히려고 노력했다. 1968년 장석 공방에 들어가 열심히 일해 공방일 뿐 아니라 고가구 보수 업도 겸했다.

24살~25살 때쯤 독립해 작은 천막을 치고 고가구 수리업을 겸해 공방을 차렸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자리 잡은 공장에 일어난 화재로 알거지가 됐다. 그는 돈을 모으기 위해 자기가 가르친 제자들 공방에 취직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제자가 주는 월급을 받으면서 재기의 꿈을 꾸며 모은 돈으로 7년 만에 재기했다.

어렵게 공방을 다시 차리고 독립해 운영했으나 형편은 좋아지질 않았다. 기계를 사용하면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물건을 만들면 형편이 나아진다. 하지만 그는 “돈이 없어 수작업으로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게 됐다”며 “장인은 돈을 바라면 안 된다. 작품을 위해 묵묵히 꾸준히 일 했다”고 말했다.

박문열 선생이 만든 자물쇠. ⓒ천지일보 2021.5.28
[천지일보 경기=송미라 기자] 박문열 두석장이 만든 자물쇠. ⓒ천지일보 2021.5.28

1987년부터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했으나 낙선 아니면 고작 입선이었다. 1993년 전승공예대전에서 비밀자물쇠로 장관상(3등)을 타고 그 이후 인정을 받아 경복궁의 근정정, 흥국전 등을 보수공사 하면서 보람을 느꼈다. 그는 “옛것을 수리할 때 갈지 않고 보수해서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고집한다”고 장인 정신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이후 2000년 7월 22일 드디어 국가무형문화재 제64호 두석장 보유자로 인정받게 된다. 선생은 현재 장석 제작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전통건물 보수 현장에서 필요한 철물을 제작하고 현장에서 직접 설치도 한다. 등자쇠(들쇠), 아궁이 함실의 문 등을 제작해 설치까지 마무리한다. 이러한 일 외에도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운영 중인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장석반을 개설해 25~30명의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황동촛대, 비밀 자물쇠류, 황동기재반닫이, 백통평안도반닫이, 은입사촛대 등의 수업을 한다. 또 파주시 광탄면 만장산로에 400여평의 공간에 심경 장석공방을 열고 1년에 한번 제자들을 초대해 현장 실습을 시키고 있다. 앞마당에는 제자들이 선물한 박문열 선생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박문열 두석장은 “강의하면 힘이 들긴 하지만 보람도 있다. 빠른 기법도 있다. 하지만 시간 걸리더라도 제대로 하라고 가르친다”며 5년째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도 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박문열 선생이 ⓒ천지일보 2021.5.28
[천지일보 경기=이성애 기자] 박문열 선생이 지난 18일 직접 제작해 만든 앞마당의 자물쇠를 열어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1.5.28

전통문화의 전망에 대해

박문열 두석장은 “전통문화의 전망에 대해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다고 본다”며 “이유는 우리나라가 옛날의 문화를 찾고 보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다면 소비성이 있어 밝다고 전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에 걸맞게 장인들도 철저한 장인 정신을 갖고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웃 일본은 철저하게 장인을 대접하는 문화가 뿌리내려 있다”며 “우리나라도 인간문화재를 만들고, 전승공예대전 같은 등용문의 기회도 주어지고 옛것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힘들 때도 있지만 보람도 있다”며 “지금은 경기도주택공사(GH)에서 지원도 해주니 형편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스승의날(15일) 학생들로부터 꽃다발을 받으며 눈물이 핑 돌았다”며 “인내 없이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일인 만큼 어떤 일을 할 때 끝까지 인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옛날 학교 땅에 서울 공예박물관이 세워진다. 박물관은 오는 6월 개관 예정이다.

ⓒ천지일보 2021.5.28
[천지일보 경기=송미라 기자] 박문열 선생의 직접 제작해 만든 자물쇠와 흉상이 앞마당에 장식돼 있다ⓒ천지일보 202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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