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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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易經)이 점의 결과를 기록한 것은 사실이지만, 학자들은 거기에서 자연철학과 사회철학을 유추해냈다. 가까이로는 몸에서 원리를 얻고, 멀리에서는 만물에서 원리를 얻는(近取諸身 遠取諸物) 사유법칙으로 인류의 끊임없는 번성과 우주의 생성변화를 하나의 법칙으로 연결했다. 또한 자연의 인과관계를 분석하고 판단해, 중국고대의 독특한 우주관과 생명관을 형성했다. 원(元)은 근본적이고 위대한 성장 동력인 무한한 우주의 에너지이다.

이 에너지는 지극히 작은 존재(元素)에서 지극히 광대한 존재로 자유롭게 변화한다. 시초이자 무한대인 우주의 에너지는 무차별로 공급되므로 지극히 선(善)하다. 형(亨)은 발전과 번영을 이루는 장엄한 자연계의 시스템이다. 유기체는 우주라는 대환경과 지구라는 중환경, 생태계라는 소환경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다. 유기체가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소통은 신뢰가 바탕이 돼야 순조롭다.

따라서 형은 만물의 존재형태로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마를 의미한다. 리(利)는 순조로움이다. 유리하다는 말은 곧 목표를 순조롭게 달성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목표의 정당성이 중요하다. 부당한 목표추구는 리가 아니다. 리(利)를 의(義)와 의(宜)로 제한한 것은 이러한 의미이다.

만물은 각자의 존재 이유에 따라 타자와 관계를 형성한다. 의(義) 또는 의(宜)는 마땅히 이름값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름값을 다한다는 철학이 유가의 정명(正名)사상이다. 만물이 의를 다하면 우주의 시스템이 순조롭게 가동된다. 유가의 이상적 삶의 목표인 입신양명(立身揚名)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인의 부귀영화를 얻는 천박한 개념이 아니라 천지공사(天地公事)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정(貞)은 우주와 만물이 지닌 항구불변의 진리이자 도(道)이다. 그러나 진리에는 만물은 반드시 변한다는 원칙도 포함돼 있다. 원이 건괘의 존재 형태라면 형과 리는 작용이고, 정은 건의 도이다. 대인(大人) 또는 성인(聖人)은 우주와 함께 그 덕을 공유하고, 일월의 광명처럼 세상을 밝게 만들며, 사계절의 변화처럼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므로 그의 언행은 귀신이 좌우하는 길흉을 능가할 수가 있다.

군자(君子)는 글자 그대로 군주의 아들을 가리켰다. 군주의 아들이라면 왕자(王子)와 같은 말이겠지만, 군은 군주에서 왕족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범위에서 사용된 존칭이다. 그러므로 군자를 반드시 왕자라고 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남자를 부를 성 뒤에 붙이는 호칭으로 사용된다. 고대 일본에서는 고귀한 여성의 존칭이었다. 역경에서는 심신이 건강한 사람을 군자라고 한다.

군자는 배움을 통해 기량 또는 에너지를 모으고(學而聚之), 자신의 배움에 대해 옳고 그름을 물어서 선택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에 독선적이지 않고(問而辨之), 관용으로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는 도량을 지니며(寬而居之), 사회적 조화를 목적으로 행동하는(仁而行之) 사람이다. 맹자(孟子)는 등문공(滕文公) 하편에서 이러한 사람을 대장부(大丈夫)라고 했다. 장의(張儀)나 공손연(公孫衍)과 같은 유세객들을 높이 평가했던 경춘(景春)이라는 사람이 제후들을 두렵게 만드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가 아니냐고 묻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거처할 때는 천하를 무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며, 뜻을 세우면 천하를 바른 위치로 세울 수 있으며, 행동할 때는 천하의 대도를 추구한다.

뜻을 이룩하면 그것이 백성들과 함께 한 결과로 생각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면 홀로라도 그 도를 행한다. 부귀를 얻으면 지나치게 누리지 않고, 가난해도 뜻을 바꾸지 않으며, 폭력과 무력에도 자신을 굽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장부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러한 대장부가 아니면 공직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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