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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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4일 ‘다산연구소’ 게시판에 베트남 교민잡지사 ‘굿모닝 베트남’이 ‘목민심서와 호치민 주석’에 대해 문의했다.

“목민심서를 호치민 주석이 탐독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박헌영이 목민심서를 호치민 주석에게 선물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위의 이야기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어서 문의드립니다.”

‘다산연구소’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호치민 주석의 목민심서 탐독 이야기는 근거가 전무합니다. 국제 레닌학교 시절, 박헌영과 호치민 주석의 목민심서 일화도 확인된 바 없습니다.”

2009년에 안재성이 지은 ‘박헌영 평전(실천문학사)’이 발간됐다. 안재성은 이 책에 박헌영과 호치민의 단체 사진과 글을 실었다.

책 앞부분에는 19명의 단체 사진(남자 11명, 여자 8명)이 있는데 ‘1929년 모스크바 국제 레닌학교 재학 중,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김단야, 박헌영, 양명이 나란히 앉아 있다. 뒷줄 맨 왼쪽은 베트남의 호치민, 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주세죽’이라는 설명을 붙여 놓았다.

또한 책 146~147 페이지는 다음과 같다.

“국제 레닌학교는 일본어나 조선어는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박헌영은 영어로 수업하는 반에 편성되었다. 영어 수업 외에 프랑스어·중국어… 핀란드어·인도어 수업이 있어 학생들은 각자 익숙한 언어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학생 중에는 베트남 공산당의 젊은 지도자 호치민도 있었다. 한자 발음대로 호지명이라 불리던 그는 박헌영과 각별히 친해서 조선의 역사와 사상을 알게 되었다. 박헌영은 그에게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의 저서 ‘목민심서’를 선물했다. 나라의 관리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인민을 대해야 하는가를 기록한 이 책은 장차 베트남의 지도자가 되는 호치민에게 평생의 지침이 되었다. 28) 주세죽은 동방노력자 공산대학에 입학했다.”

28)은 627페이지에 주석이 실렸다.

“박헌영이 준 ‘목민심서’는 베트남 하노이의 호치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박헌영은 이 책에 친한 벗이란 뜻의 붕우(朋友)라는 한자가 포함된 서명을 하여 선물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1년 5월 17일에 조선대학교 ‘한국 베트남 국제학술대회’에서 최근식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1929년 국제 레닌학교 재학시절 찍은 단체사진의 호치민은 얼굴이 판이하며, 박헌영(1900∼1956)과 호치민(1890∼1969)의 연표를 보아도 두 사람은 만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안재성은 2020년 1월에 ‘박헌영 평전(인문정신 출판사)’을 다시 발간했다. 그런데 너무나 놀랍게도 박헌영이 호치민과 같이 찍었다는 단체사진과 호치민 관련 글이 통째로 빠졌다.

2020년의 책엔 ‘영어 수업 외에 프랑스어·중국어… 핀란드어·인도어 수업이 있어 학생들은 각자 익숙한 언어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주세죽은 동방노력자 공산대학에 입학했다(p157-158)’로 되어 있어 2009년 ‘박헌영 평전’에 실린 호치민 관련 글은 아예 빠졌다.

이는 박헌영과 호치민은 모스크바 국제 레닌학교를 같이 다닌 사실이 없음을 저자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어찌 보면 저자는 진실에 충실한 평전을 다시 쓴 것이다.

결론적으로 박헌영과 호치민이 만난 사실, 박헌영이 호치민에게 목민심서를 선물했다는 사실은 모두 가짜뉴스다. 가짜는 일시적으론 이기겠지만 영원히 진실을 이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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