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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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문 대통령이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크게 만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당은 칭찬 일색이고 야당 가운데 가장 큰 국민의힘도 칭찬 쪽에 무게를 두는 듯하다. 조선일보 빼고 중앙일보 등 주요 보수 언론 매체들도 대체로 칭찬하는 분위기이다.

‘보수세력’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지는 정당과 매체들이 한미정상 회담을 칭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이 원한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선언, 판문점 선언에 대한 존중 등의 표현이 들어 있어 문재인 정부의 남북협력 노선에 힘을 실어 주는 것 같지만 동시에 ‘유엔 결의의 완전한 이행’ 등 북한을 압박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공동성명의 전체 맥락을 보면 ‘대중국 포위전략’을 밀고 나가는 미국의 의도가 관철되는 내용이다. 쿼드(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연합체), 인도-태평양 구상, 대만, 남중국해 관련 표현들은 평상시 미국이 강조한 것들이다. 공동성명은 대한민국의 평화와 안전, 먼 미래를 생각할 때 부적절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주권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문재인 정부의 모습은 한국이 미국의 혈맹이라고 스스로 강조하는 가운데 주권국가로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모습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미국편도 중국편도 아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똑바로 서야한다. 자존 없이 번영 없다. 자존이 있어야 실리도 챙길 수 있다.

정상회담 합의에는 미국이 한국군 55만명에게 백신을 주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속이 불편하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은 자국의 군대에 대한 접종도 스스로 못하고 남의 나라에 의존하는 나라라는 인식이 퍼지게 만든 점이다. 또 다른 문제는 한국군의 미군에 대한 종속성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은 점이다. 한 나라의 군대는 국가 그 자체를 상징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한국의 미국에 대한 의존성 내지 종속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 쉬운 사안이었다. 이 점은 미 국방부가 백신을 지원한 이유로 ‘유사시 한국군이 미국의 지휘를 받는다’는 걸 근거로 드는 데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회담이 끝난 직후 미국 국방부는 한국군에 백신을 제공한 이유를 들면서 “군사적 갈등 시 한국군은 미국 정부의 작전 지휘를 받고 있다”는 걸 강조했다. 우려가 현실이 됐고 치욕적인 일이다.

작은 나라도 남의 나라에게 작전지휘권을 넘겨주지는 않는다. 아무리 착한 나라라 할지라도 남의 나라 작전 지휘권을 갖고 있는 나라가 작전 지휘를 받는 나라를 주권국가로 존중할 리 없다. 백신 조금 지원하면서 한국이 ‘유사시 미국의 작전 지휘를 받고 있는’ 주권이 제약된 나라라는 점을 온 세계에 광고했다. 한국 국민의 자존심에 대한 고려는 안중에도 없는 행동이다.

미국 탓만 할 수 없다는 게 우리의 곤궁한 입장이다. 70년이 넘도록 남의 나라에게 군사주권까지 내어주고 얼이 빠진 채 안일하게 국가를 운영해 왔다는 점부터 자책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 국민들 다수가 전작권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전작권을 순순히 내어 주지 않고 국방비 증액을 조건으로 걸거나 준비 상태 미비 등의 이유를 내세워 계속 미뤄왔다. 정상회담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미국의 필요에 맞춰 한국 정부에게 수억 달러씩 돈을 내어 놓으라고 하면서도 한국의 핵심적 주권사항인 전시작전권 관련해서는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권 전환’이라고 못 박았다. 대한민국의 주권을 훼손하고 한국 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 전작권 전환 공약’을 공수표로 날렸다. 책임을 전임 정권에 돌렸다. 책임 전가이고 대국민 약속 파기에 대한 변명에 불과하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동맹 동맹 하는데 동맹은 주권 존중에 기초한 호혜의 관계에 바탕을 둘 때 의미가 있다는 점부터 인식해야 한다. 미국은 군사적 주권의 핵심사항인 전작권을 한국 국민에게 즉시 조건 없이 넘겨라. 대한민국은 스스로 방위할 충분한 힘과 조건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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