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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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천건(重天乾)괘는 강건함을 상징하는 건괘(乾)가 상하로 중첩됐으며, 6개의 효가 모두 양효이므로 순양괘(純陽卦)라고도 부른다. 건의 자형은 태양이 떠오르는 모양을 가리키는 간(倝)과 초목이 움트는 모양을 가리키는 을(乙)이 합쳐진 형성(形聲), 회의(會意)문자이다. 땅(地)과 모(母)를 상징하는 곤괘(坤卦)와는 배합관계로 두 괘를 합쳐 부모괘라고 한다. 64괘 가운데 나머지 62괘는 모두 이 두 괘의 변화이다. 공영달(孔穎達)의 주역정의에 따르면 건괘는 양기가 축적된 하늘의 상(象)이다. 천(天)은 하늘의 체(體)이고, 건(乾)은 하늘의 용(用)이다. 왕부지(王夫之)는 주역패소(周易稗疏)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건(乾)은 倝과 乙로 이루어졌다. 倝은 떠오르는 태양의 찬란한 광채, 乙은 기(氣)가 펼쳐지는 것을 가리킨다. 아침해가 떠올라 청명한 빛을 발휘하면, 음을 가리고 있는 것들이 사라진다. 만물이 소생하고, 일을 일으키니 이것이 건의 본의이다. 원형이정의 4가지 덕을 고루 갖추고 있으니 강건하다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

괘사인 원(元), 형(亨), 이(利), 정(貞)은 건괘의 기본 성질이 성대(盛大)하고, 형통(亨通)하며, 순리적으로 이로움을 주는, 올곧음(貞)을 나타낸다. 이름을 지을 때는 이 4개의 글자를 많이 사용했다. 조선시대 소윤의 우두머리 윤원형(尹元衡)은 이름에 원자를 먼저 쓰고 뭔가 미진해 균형을 잡으라는 형자를 붙였다. 형이라는 글자는 소가 뿔로 사람을 뜨지 못하도록 두 뿔 사이에 대는 나무를 가리킨다. 윤(尹)이라는 글자는 속칭 쇠꼬리윤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참되고 믿음직하다는 뜻과 관직의 명칭으로 사용된다. 이름과 달리 윤원형은 무지막지한 권력자로 변했다. 그의 자는 언평(彦平)으로 역시 평상 수준을 넘어서지 말라는 뜻이었다. 원이라는 큰 글자를 선택하고 형이나 평을 써서 제어하려고 했다. 차라리 일형(一衡)이라 지었으면 원만한 사람이 되었을까? 이름을 짓는 것은 만만치 않다. 이(利)자는 잇속을 밝힌다, 예리하다는 뜻이 있어서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 춘향전에는 이몽룡이 이 대목을 ‘원코, 형코, 이코, 정코, 춘향이코, 내코, 두 코를 마주 대니 좋코’라고 중얼거리다가 방자에게 핀잔을 듣는다.

원형이정에 대한 최초의 풀이는 춘추좌전 양공 9년에 나온다. BC564년 여름에 노선공(魯宣公)의 부인인 목강(穆姜)이 동궁에서 죽었다. 처음에 동궁으로 갔을 때 점을 쳤는데, 중산간괘(重山艮卦)의 육이효가 변하지 않는 8을 얻었다. 육이효가 변하지 않고 나머지 효가 모두 변하면 택뢰수괘(澤雷隨卦)가 된다. 사관은 수괘가 나간다는 뜻이므로 빨리 동궁에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목강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가 없다. 수괘에서는 원형이정, 무구(无咎)라고 했다. 원은 체의 으뜸이고, 형은 아름다움이 모인 것이며, 이는 올바른 조화이고, 정은 만사의 뼈대이다. 인(仁)을 행하면 사람들을 이끌 수 있으며, 아름다운 덕은 예와 합한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 올바름과 부합되며, 올곧으면 모든 일의 근본이 된다. 그러므로 속일 수는 없다. 나는 여자로서 반란에 가담했으며, 아랫사람으로서 어질지도 못했으니 원의 덕을 행하지 못했다. 나라를 편하게 만들지 못했으니, 형의 덕을 갖추지도 못했다. 일을 도모하다가 이렇게 유폐됐으니 이의 덕도 없다. 남의 아내로서 간통을 했으니 정의 덕도 잃었다. 4가지 덕을 지녔다면 수괘라도 허물이 없겠지만, 나에게는 수괘가 맞지 않는다. 나는 나쁜 여자이다. 어떻게 허물이 없겠는가? 나는 이곳에서 죽겠다.”

목강은 하늘의 계시보다 인간으로서의 도덕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죽음을 앞둔 그녀는 자성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성찰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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