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리 쌀

박헌정

좀도리 쌀이 있다.
밥 지을 때 한 술씩 덜어놓는 쌀.
퇴근길, 내 마음의 좀도리를 덜어놓는다.
서러운 날 한 줌, 기쁜 날에도 한 줌
아무 느낌 없는 날에도 스르르 한 줌
그렇게 열심히 좀도리를 모았다.
내 청춘 굽어지고,
힘들고 힘들어 눈물 핑 돌 때까지,
오늘, 바람 부는 유월의 퇴근길
술 한 잔에 문득 생각이 났다.
어머니가 새벽마다 갈무리 한 좀도리는,
지금의 나를 키워준 좀도리는,
그 꼬부라진 평생 동안 몇 줌이었을까.
나는 오늘도 좀도리 쌀 한 줌을 벌었다.

 

 

 

[시평]

‘좀도리 쌀’은 ‘절미(節米)’, 곧 쌀을 아낀다는 뜻의 전라도 방언이라고 한다. 밥을 지을 때 한 술씩 덜어서 두는 쌀, 그러니 한 술씩 절미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듯 한 술씩 덜 먹고 모아둔 쌀로 어려울 때 유용하게 쓰는 것이 좀도리의 의미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마을 곳곳에서 좀도리 쌀 운동을 한다. 주민들이 한 술씩 아껴서 모은 쌀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는 마음 훈훈한 삶의 실천, 이것이 오늘 마을 곳곳에서 잔잔히 일어나고 있는 좀도리 쌀 운동이다.

일찍이 동학 천도교에서는 부인네가 아침밥을 지을 때 식구 수에 맞추어 쌀 한 술씩을 덜어서 모아둔다. 이를 성미(誠米)라고 부른다. 이렇듯 한 달 내내 모은 쌀을 정성 들인 쌀이라는 이름의 성미(誠米)로 동학 천도교당에 납부를 한다.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강점되어 식민의 삶을 살던, 그 어려웠던 시절, 이 좀도리 쌀과 매우 유사한 성미를 천도교인들이 아침저녁으로 뜨고 떠서, 이를 모아 3.1 독립만세운동을 거국적으로 일으킬 자금을 삼았고 한다. 어머니가 새벽마다 갈무리 한, 지금의 나를 키워준 그 좀도리 쌀과 같은, 우리 민족의 좀도리 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서러운 날 한 줌, 기쁜 날에도 한 줌, 오늘도 우리 진정한 좀도리 쌀을 마음 다 하여 모아야 할 것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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