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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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3조 제3항을 보면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자신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자기책임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 헌법 규정은 친족의 행위로 인해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연좌제금지를 명문으로 확인한 것이다.

연좌제는 근대 이전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행됐던 것으로 범죄인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책임을 물어 처벌하는 제도였다. 연좌제는 근대형법이 죄형법정주의의 정립과 함께 형사책임의 개별화 원칙이 확립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그렇지만 연좌제는 동양에서 근대 이후에도 계속 유지됐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조선말 칙령으로 폐지하기 전까지 시행됐다.

법의 영역에서 자기책임의 원칙은 로마법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이 원칙은 주로 민사법 분야에서 적용됐다. 근대 형사법 체계가 구축되면서 형사법 분야에서도 자신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원칙이 확립됐다. 자기책임의 원칙이 형사법에서 적용되면서 점차 자신이 아닌 친족, 나아가 다른 사람의 범죄행위에 대해 연대책임을 지우는 연좌제는 폐지하게 됐다.

우리나라는 1948년 헌법을 제정하면서 연좌제금지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않았다. 헌법에 연좌제금지가 명문화된 것은 1980년 제8차 개정 헌법에서부터이다. 헌법이 자기책임원칙을 규정하면서 친족의 행위로 인한 불이익한 처우를 금지한 것은 헌법현실에서 알게 모르게 연좌제가 계속 유지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0년 헌법에서 아예 명문으로 친족의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한 것이다. 헌법은 친족의 행위로 불이익한 처우 금지를 규정하고 있지만, 불이익한 처우는 단순히 형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받는 모든 종류의 불이익한 처우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친족이란 민법상의 친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배우자·혈족·인척뿐만 아니라 자신을 제외한 모든 다른 사람을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헌법이 자기의 행위가 아니라는 표현을 통해 자기를 제외한 다른 사람을 의미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반국가행위자의처벌에관한특별조치법’의 규정이 친족의 재산까지도 반국가행위자의 재산이라고 검사가 적시하기만 하면 증거조사 없이 몰수형을 선고하도록 돼 있는 것을 헌법 제13조 제3항에서 금지한 연좌형이 될 소지가 커서 위헌이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헌법재판소는 후보자와 선거운명공동체를 형성해 활동하고 있는 배우자의 선거법 위반책임을 후보자에게도 연대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연좌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헌법 제13조 제3항은 친족의 행위와 본인 간에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아무런 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친족이라는 이유 그 자체만으로 불이익한 처우를 가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 이는 근대 실정법 체계가 구축되고 형사법 분야에서 죄형법정주의의 정립과 범죄행위에 대한 자기책임원칙을 도입하면서 자신과 무관한 다른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을 헌법에 명문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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