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어버이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찾은 어르신들이 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천지일보 2021.5.8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어버이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찾은 어르신들이 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천지일보 2021.5.8

코로나19에 황사·미세먼지로 탑골공원 일대 ‘한산’

“어버이날에도 연락 없어… 동방예의지국은 옛말”

“코로나19에 무감각… 신경 쓰는 노인 거의 없어”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다른 노인들이 얘기하는 것 들어보면 자식들이 잘하는 집안이 별로 없어. 대부분 그렇다고 하니깐 나도 푸대접받고 있어도 그런 가보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

8일 오후 탑골공원 근처에서 만난 박창수(가명, 89, 서울시 성동구) 할아버지가 어버이날을 맞아 자녀들로부터 연락받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답변이다.

‘어버이날’ 당일인 이날 탑골공원을 찾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지난해 2월 탑골공원이 폐쇄되면서 노인들의 모습을 예전처럼 많이 볼 수 없었다.

게다가 희뿌연 황사와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평소보다 거리가 한산했다.

탑골공원 돌담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니 군데군데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혼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어버이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찾은 어르신들이 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천지일보 2021.5.8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어버이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찾은 어르신들이 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천지일보 2021.5.8

박 할아버지는 “어버이날인데 자식한테 아직 연락도 없다”며 “동방예의지국이란 말도 옛말이다. 우리나라도 미국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5남매가 있지만, 혼자 성수역 근처에 살고 있다”며 “나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노인들 거의 다 나 같은 처지다. 어버이날이 무슨 필요가 있겠나”라며 체념했다.

자식한테 연락이 없다던 박 할아버지의 왼쪽 가슴에 달린 조화 카네이션이 눈에 띄었다. 아침에 탑골공원에서 카네이션과 마스크, 양말, 빵 등을 나눠줬다는 게 박 할아버지의 설명이다.

돌담 밑 돌의자에 앉아 있던 강윤호(가명, 78, 서울시 관악구) 할아버지는 “여자는 나이를 먹으나 안 먹으나 바쁘다”며 “남자들이야 갈 데도 없어 빙빙 돈다”라고 했다.

식품업계에 40년 넘게 종사하다가 작년에 일을 그만뒀다는 강 할아버지는 “(탑골공원)에 나와도 아는 사람이 없다”며 “나이 먹어 일도 이제 못하고 그냥 나와서 혼자 앉아 있다 들어간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어버이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찾은 어르신 가슴에 카네이션이 달려 있다. ⓒ천지일보 2021.5.8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어버이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찾은 어르신 가슴에 카네이션이 달려 있다. ⓒ천지일보 2021.5.8

탑골공원에 10년째 나오고 있다는 김종오(가명, 90, 서울시 동대문구) 할아버지는 “집에만 있으면 심심해서 아침 먹고 나와 한 바퀴 돌다가 점심 사 먹고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 오는 노인의 80%는 혼자 와서 앉아 있다가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20%가 둘 셋씩 어울린다”며 “나오다 갑자기 안 나오면 죽었거나 몸이 안 좋아 입원했거나 요양원에 간 것”이라고 했다.

이날 탑골공원에서 만난 대부분 노인은 코로나19에 대해 무감각한 듯한 발언을 해 우려를 자아냈다. 면역력이 약한 노인이라서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높음에도 마스크가 헐렁하거나 벗고 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폐쇄된 탑골공원. ⓒ천지일보 2021.5.8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폐쇄된 탑골공원. ⓒ천지일보 2021.5.8

전태호(가명, 77, 서울시 중랑구) 할아버지는 “코로나19 느낌도 안 난다. 여기 오는 노인 중에 코로나 신경 쓰는 사람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편 8일 신규 확진자 수는 지난달 28일(769명) 이후 열흘 만에 다시 700명대로 올라섰다. 전국에서 산발적인 집단감염이 잇따르면서 ‘4차 유행’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의 노인들이 거리에 놓은 의자에 앉아 있다. 종로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면역력이 약한 노인들이 많이 있는 탑골공원을 폐쇄했다. ⓒ천지일보 2021.5.8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의 노인들이 거리에 놓은 의자에 앉아 있다. 종로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면역력이 약한 노인들이 많이 있는 탑골공원을 폐쇄했다. ⓒ천지일보 20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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