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not caption

민주당 신임 송영길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민주당 당명을 빼고 다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얼핏 보면 별 감흥 없는 ‘정치적 레토릭’ 쯤으로 치부될 수 있겠지만, 송 대표의 심중은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산물로 봐야 한다. 당내 주류세력과 패권경쟁을 하면서도 그들을 향해 ‘바꾸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자칫 당 대표 경선에 큰 부담이 될 것임을 잘 알면서도 민주당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강성 주류세력의 농단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민주당 신임 송영길 대표에게 거는 기대는 실로 막중하다. 위기로 치닫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지켜내면서 그 연장에서 차기 대선까지 책임져야 하는 고난의 길이다. 게다가 강성 주류세력과의 싸움도 견뎌내야 한다. 당 지도부 면면을 봐도 우군은 많지 않다. 그리고 곧 조성될 대선정국에서는 당 대표의 영향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무엇하나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막중한 책임만 떠안게 된 형국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피할 수는 없다. 답은 의외로 간명하다. 송 대표는 그 과제를 정확하게 읽어냈다. 송 대표가 천명한대로 민주당 당명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 그것만이 여권 전체가 사는 길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송영길 대표의 첫 행보부터 눈에 띈다. 송 대표는 첫 일정으로 국립현충원을 찾아서 전직 대통령들 묘역을 참배했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평가를 남겼다. 손원일 제독과 김종오 장군 묘역도 참배했다. 이전과는 차별성을 부각시키려는 노력이겠지만 당내 반발도 적지 않았다. 따라서 송 대표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교훈은 끝까지 명심해야 할 경구다. 하지만 그 의지만큼은 비교적 신선해 보였다. 그리고 당내 주요 당직자 인선에서도 강성 주류세력을 뒤로 물리는 조치를 취했다. ‘민심 위에 당심 없다’는 너무도 당연한 이치를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차기 대선 10개월을 남기고 막 출항한 민주당 ‘송영길호(號)’, 시작부터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에 대해서 벌써부터 기대 반 우려 반의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송영길 대표가 말한 민주당 변화의 핵심은 당 안팎의 ‘구각(舊殼)’을 깨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민심을 잃었다. 변화와 개혁의 동력도 소진되고 말았다. 아니 그런 의지조차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이다. 최근 단행된 소폭 개각이 주는 메시지는 문 대통령 스스로도 이제는 내려놓고 있음을 고백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앞으로 만회의 기회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부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당이 나서야 한다. 문재인 정부 집권 5년차의 변화와 개혁을 향한 동력은 민주당이 주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당과 청와대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여권 전체를 감싸고 있는 구각을 깨는 것일까. 그것은 문재인 정부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주요 이슈들에 대해서 이제는 ‘반전(反轉)’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사람’과 ‘가치’ 그리고 ‘민심’과 조응하는 송영길호의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 강성 주류세력의 독주는 안 된다. 과거와의 싸움이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당이 앞장서고 청와대가 화답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하산 길의 청와대는 위험하다. 내년 3월의 대선 고지를 향해 전진해야 할 민주당이 앞장서는 것이 상식이다. 그래야 약간의 민심이라도 더 얻을 수 있다.

마침 민주당 송영길호가 민심에 호소할 수 있는 첫 시험대가 마련되고 있다. 지금 국회에서는 국무위원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말에 단행된 뚜렷한 메시지 없는 소폭 개각이었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번에도 실망이다. 과연 문재인 대통령이 택한 ‘안전한 하산 길’이 최선이었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변화와 개혁의 모든 역량을 끌어 모아 ‘중단 없는 혁신의 길’로 갔어야 했다. 아직 그럴만한 여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이 더 확실한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후보자들의 자질과 품격은 국민의 눈높이는커녕 기본적인 소양조차 부족할 만큼 충격적이다.

가족을 동반해 외유성 출장을 가고 논문 표절까지 의심되는 후보자,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관 신분이던 한 후보자의 아내는 엄청난 양의 도자기를 신고 없이 들여와 판매까지 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그들의 행태를 알면 알수록 부끄럽고 민망하다. 게다가 가족 동반 외유가 ‘관행’이라거나, 도자기는 집에서 사용하던 것이라는 해명은 국민의 분노를 촉발시키는 궤변에 가깝다.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번에도 국무위원 후보자로서의 결정적인 결격사유는 아니라는 강변이다. 과연 그럴까. 그러고도 민주당이 앞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지난 4.7 재보선에서 분노한 민심의 무서움을 벌써 잊었다는 말인가.

이제 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나서야 한다. 국민의 가슴에 염장을 지르는 국무위원 후보자들, 그럼에도 그들을 일방적으로 감싸는 민주당의 구태 그리고 인사청문보고서 없이도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일방적으로 임명을 강행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일탈을 이제는 막아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송영길 대표가 나서야 한다. 민주당 당명만 빼고 다 바꾸겠다는 그 엄중한 약속을 처음부터 망쳐서는 곤란하다. 당장 청와대로 달려가도 좋다. 임명을 또 강행할 것이라는 국민 대부분의 우울한 전망을 이번엔 반드시 ‘반전’시켜야 한다. 그래야 당에 힘이 실린다. 또 그래야 청와대도 박수를 받는다. 민주당 송영길호가 출항 직후에 직면한 첫 시험대, 자칫 출항부터 파산될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과연 이 난관을 어떻게 돌파할지 송 대표의 축적된 저력을 기대해 본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