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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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교육부가 ‘2022 개정 교육과정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현재 초6이 고교에 입학하는 2025년부터 모든 고등학교에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는 안이 들어 있다.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고등학교에서도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3년간 192학점(2560시간)을 채우면 졸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수업량의 기준이 현재 ‘단위 시간’에서 대학처럼 ‘학점’으로 전환된다. 1학점은 50분 기준으로 16회를 이수하는 수업량이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고려한 맞춤형 교육을 시행하겠다는 취지로 도입했다. 교육과정의 다양화를 위해 학교에서 가르치기 힘든 사진, 목공, 뮤지컬, 연극, 웹툰, 로봇, AI, 소설 쓰기 등과 같은 선택과목이 생긴다. 하지만 대학 입시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고교학점제는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학생들이 수능과 대학입시에 유리한 과목에 몰리고 비인기 교과는 울며 겨자 먹기로 밀려나 선택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입시와 관련 없는 선택과목 시간에는 학생들이 국·영·수 등 수능 공부를 하는 교실 붕괴 현상이 벌어질 거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게다가 당장 현재 고2가 치를 2023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를 비롯해 서울 소재 16개 주요 대학이 수능 위주 정시 비중을 10% 늘려 40%로 상향했다. 대입 수시에 맞춘 고교학점제는 도입하면서 대학입시는 정시 확대로 상충하는 방향으로 가니 교사와 학생들만 우왕좌왕하고 있다. 앞뒤 안 맞는, 교육 콘트롤타워의 부재인 대한민국 교육정책의 민낯이다. 정시 확대를 추진하면서 정시와 상관없는 고교학점제를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문제에 대한 고찰과 대안없이 도입하는 건 재고해야 한다.

평가방식도 국어, 영어, 수학, 통합사회, 통합과학 등 5개 공통과목은 석차 등급제, 선택과목은 성취평가제로 바뀐다. 석차 등급제는 학생의 원점수에 따라 석차가 정해지고, 수강인원에 따라 석차를 1~9등급까지 등급으로 나누게 된다. 성취평가제는 등급 없이 A~E 학점으로 성취도를 기재하는 방식인데 내신으로 인한 변별력이 사라져 대학입시에 미칠 파장이 크다. 유급제도 도입되는데 유급을 당한 학생은 소송해서라도 뒤집으려 할 것이고 이를 우려한 교사의 성적 부풀리기가 만연해 의미 없는 제도가 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벌써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교사 수급 문제다. 고교학점제 시범 학교 교원 정원이 60여명인데 늘어난 강사가 2~30여명 가까이 된다. 전국의 모든 고교에서 필요한 강사를 동시에 채용하면 인력난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강사로 교원자격증 없는 사람도 채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이미 발의된 상태다. 학교 내에서 무자격, 수준 미달 강사로 인해 벌어질 부작용의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 몫이다. 이들이 또 현재 학교 비정규직 노조처럼 세력을 만들었을 때 사회에 미칠 파장 또한 엄청나다.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고교학점제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202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논·서술형 시험 도입도 검토한다. 40만명에 달하는 수험생의 논·서술형 시험문제를 단기간에 수천명의 채점위원이, 같은 채점 기준에 의해 공정하게 채점이 불가능함을 생각조차 못 하는 모양이다. 국민들이 수시 축소하고 정시 확대를 요구한 이유는 수시가 공정성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켜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목적이 가장 컸다. 논·서술형 시험 도입은 명백히 또 다른 불공정을 도입하는 것과 다름없어 또 공정성 논란이 계속 생길 가능성이 크다.

학교나 교사에게 교과서 편찬·발행 등의 모든 권한을 위임하는 교과서 자유 발행제 도입도 추진하고, 부교재 등으로 많이 활용되는 인정 교과서는 학교 내 또는 학교 간 교사연구회를 통해 개발하게 한다고 한다. 전교조 교사 위주의 교사연구회가 활발하게 운영되는 혁신학교는 어떤 교재가 개발될지 뻔하다. 대놓고 진보 교육의 판을 깔아주겠다는 의도로 의심된다.

결론적으로 고교학점제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제도다. 학교 시설과 교사 수급 면에서 전혀 준비되지 않은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대통령 공약 사항이라고 무리하게 추진하는 인상이다. 수시·학종·고교학점제 등 불공정의 소지가 많은 제도를 도입하려면 학부모와 학생의 의견을 수렴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입시와 상관없는 선택과목을 잔뜩 만들어 놓으면서 대입제도는 그대로라면 학교와 학생의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대우받는 사회를 먼저 만들지 않으면 아무리 취지가 좋은 제도를 도입해도 결코 학생들은 입시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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