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3월 7일 인도 콜카타 웨스트벵골주 선거를 앞두고 공개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3월 7일 인도 콜카타 웨스트벵골주 선거를 앞두고 공개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인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확산으로 국가적인 재앙을 맞으면서 강력한 지지 기반을 자랑하던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위상에 균열이 생기는 조짐이다.

3일 현지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모디 인도 총리가 이끄는 집권 인도국민당(BJP)이 일부 지역 지방선거 5곳 중 3곳에서 참패했다.

핵심 격전지는 웨스트벵골주(州)였는데, 모디 총리는 지난 주말까지 이곳에 방문해 수십 차례 연설을 하는 등 집중 선거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투표 결과 웨스트벵골 주의회 선거에서는 지역정당인 트리나물콩그레스(TMC)가 전체 294석 중 213석을 차지했으며 BJP의 의석은 77석에 그쳤다.

웨스트벵골에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얻은 TMC는 인도 유일 여성 주총리인 마마타 바네르지가 이끌고 있는데, 바네르지는 선거 결과 발표 후 웨스트벵골이 “인도를 구했다”며 “코로나19를 다루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BJP는 웨스트벵골에서 패배했지만, 제1야당으로 올라서게 됐다.

아삼주, 타밀나두주, 케랄라주와 푸두체리에서도 선거가 실시됐다. BJP는 아삼주와 푸두체리에서만 정권을 잡게 됐다.

인도에서는 10일 연속 일일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30만명을 넘어섰다. 이날도 36만명 이상의 신규 확진자와 3417명의 사망자를 기록했다. 지난 2주간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인도가 독립 이후 싸웠던 모든 전쟁의 사망자 수를 넘어섰다.

◆“코로나 승리” 선언 석 달 만에 아비규환… 모디 비난받는 이유는

모디 총리의 BJP가 참패한 데는 그에 대한 민심의 분노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모디 총리는 지난 1월 28일 세계경제포럼(WEF) 가상정상회의에서 코로나19와의 승리를 선언했다. 2월에는 BJP가 ‘코로나19 전쟁에서 인도를 자랑스럽고 승리한 국가로 세계에 알린 모디 총리의 리더십’을 찬양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3월 초, 모디 정부의 보건장관은 인도가 대유행의 최종단계(endgame)에 왔다고 발표했다. 이 달에는 수천명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모디 총리의 이름을 딴 구자라트의 한 경기장에 쏟아져 나와 인도와 영국 간의 크리켓 경기를 관람했다.

주 선거 대부분은 3월에 이뤄졌으나 일부 선거구에서는 4월까지 투표가 계속됐다. 선거 운동과 투표는 이번 재앙적인 확산세의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2차 유행이 다가오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경고에도 모디 총리는 2~3월 내내 웨스트벵골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모디 총리는 때때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도 실천하지 않았다.

보통 12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대 종교 모임인 쿰브 멜라 힌두 축제는 힌두 사제들을 존중해 1년 앞당겨질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에 4월 12일에만, 3백만명 이상의 순례자들이 하리드워에 있는 갠지스강에서 집단 목욕을 했다.

지난 4월 12일 인도 북부 하리드워에서 쿰브 멜라 축제가 열린 가운데 힌두교 신자들이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즐기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 4월 12일 인도 북부 하리드워에서 쿰브 멜라 축제가 열린 가운데 힌두교 신자들이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즐기고 있다. (출처: 뉴시스)

이처럼 인도에 끔찍한 상황이 닥친 데는 모디 총리가 제도적 안전장치를 조직적으로 파괴한 결과라는 주장도 나온다. 인도 작가인 카필 코메리디는 지난달 30일 포린폴리시에 “모디 총리는 이 재난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던 모든 기관을 사실상 해체했다”며 이같이 비판했다.

카필은 먼저 대법원을 언급하며 “정부를 옹호하는 데 습관이 돼 있다”며 “그러나 이 정권이 대유행병을 끔찍하게 잘못 다루는 것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모디 총리가 공동 제작한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뉴스 매체 도르다르샨에 대해서는 “모디를 인도의 구세주로 묘사하는데 헌신했다”고 비판했다. 인도 외교관들은 모디 총리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비난하는 해외 매체에 대해 항의하는 것으로 그들의 위엄을 과시하고 있다고 카필은 전했다.

인도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정부에 비판적인 게시물을 삭제하고 있어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카필은 “이 종말론적인 시간에도 모디를 숭배하고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가장 시급한 우선 과제”라며 “인도인들은 모디에게 맞설 수단이 없다. 그는 지난 7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기자회견을 열지 않았다”고 말했다.

카필에 따르면 인도는 백신 최대 제조국이지만 그 속사정은 참담하다. 그는 인도가 사전에 충분한 양의 백신 선량을 주문하지 않아 재정적으로 궁핍한 주 정부에 백신 접종 책임을 넘겼고, 주 정부는 백신을 오픈마켓에서 가격을 협상해 얻어야 한다.

인도의 다음 총선은 3년 후다. 카필은 현재 모디 총리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크지만 그가 이 비극을 이용해 기회로 바꿀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카필은 “인도인들은 정치인들의 악행에 관해서는 건망증이 심한 민족”이라며 “모디는 그들의 건망증에 의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평생 선거에서 패배를 맛본 적 없는 모디는 자신의 패배가 눈앞에 와 있다고 믿는다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헌법을 정지시키고 독재 통치를 한 인디라 간디의 사례를 본받으려 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현재의 국가적 붕괴가 모디 총리에게 민주주의를 끝낼 수 있는 정당성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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