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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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은 광범하게 정치범 내지 사상범을 만들어 낼 성질의 법안인 점에서 우리는 단호히 반대한다” “일반 국민 중에 국보법 때문에 불편을 느끼거나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이 법이 없어지면 좋아할 사람은 오로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 체제를 적대시하는 파괴 세력뿐이다.”

두 글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드는가? 상반된 주장이지 않은가? 두 글 모두 조선일보의 사설이다. 1948년 11월 12일과 2018년 10월 10일 사설이다. 70년은 긴 세월임에 틀림없다. 그 사이 생각이 안 바뀔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떻게 정반대로 바뀔 수 있을까?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김종인씨의 할아버지 김병로 선생은 보수원조로 불린다. 가인은 휴전 직전인 1953년 4월 법전편찬위원장 자격으로 형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다소 경중의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나 이 형법을 가지고 국가보안법의 대상을 처벌하지 못할 조문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시조치법 성격의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가인은 1958년 이승만 정권이 권력을 강화하고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국회에 제출한 국가보안법 개정안에 대해 “단순히 공산주의자들의 행동을 엄중히 처단하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파생적 조항을 번잡하게 늘어놓음으로써 공산주의자들의 행동이외에 모든 국민의 사회활동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더구나 절대로 자유스러워야 할 언론에 대하여 그것을 봉쇄하거나 또는 위협할 수 있는 조항을 늘어놓았다”고 말하면서 법 개정을 반대했다. 불행히도 이후의 역사는 김병로 선생이 염려한 대로 진행됐다.

60년대 이후 국가보안법의 내용이 바뀌었을까? 그렇지 않다. 박정희 정권은 국가보안법은 그대로 두고 이보다 훨씬 센 법률을 만들었다. 반공법이다. 현행 국가보안법은 반공법의 찬양고무, 회합통신, 편의제공, 불고지죄 등의 조항을 흡수하고 반국가단체 구성·가입죄 등의 형량을 강화해서 만든 법률이다. 1948년 법률안에 비해 훨씬 악화된 법률이다.

1991년 법 개정 때 ‘법적용에 있어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한다’거나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추가됐지만 여전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적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현행 법률을 적극 변호하고 있고 국가보안법이 없으면 나라가 무너지는 것처럼 공포심을 조장하고 있다. ‘보수의 심장’으로 여겨지고 있는 조선일보가 이 같은 생각을 지속하는 한 보수 세력의 변화는 기대난망이다. 절대 수구꼴통 이미지를 벗어날 수 없다.

시대가 변하면 생각도 변해야 할 텐데 오히려 거꾸로 간다면 시대를 역행하는 것으로 사회발전의 걸림돌이 될 뿐이다. 스스로도 이념의 감옥에 갇히고 국민들 모두를 자신들이 만든 사상의 감옥에 가두려는 시도를 계속해 세상만 어지럽힌다.

한국의 보수 정치세력이라고 자임하는 국민의힘과 그 전신인 정당들의 입장은 어떤가? 국가보안법에 관한한 조선일보와 정확히 일치하고 조선일보의 입장을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 당은 기회만 있으면 자유민주주의를 외친다. 조선일보와 비슷한 논조의 신문과 종편들도 자유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산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다른 말이다. 서구에서는 리버럴 데모크라시(liberal democracy)라고 부른다. 백과사전을 보면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한 정치체제라고 설명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사상의 자유다.

국가보안법은 사상의 자유를 부정한다. 완곡히 말하더라도 ‘사상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제약’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는 정치세력과 언론매체가 국가보안법을 ‘수호’하겠다고 사생결단의 자세로 나오는 건 스스로 자신의 모순을 드러내는 행동에 다름 아니다.

진정한 자유주의자이고 참된 민주주의자라면 사상의 자유에 목숨 걸어야 한다. 언론매체들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자신이 자유민주주의자라고 계속 외치려면,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적극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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