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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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대 높은(snobbish) 영국인에게 이 상을 받아 기쁘고 감사하다.”

배우 윤여정이 지난 12일(현지시간) 열린 영국 아카데미상(BAFTA)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남긴 소감은 윤여정의 캐릭터를 여실히 보여줬다.

한국 배우 최초로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던 윤여정은 연이어 사상 첫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까지 거머쥐며 74세의 나이에 한국 영화사를 새로 썼다.

미국 독립 영화 ‘미나리’에서 순자 역을 맡은 윤여정은 영화 속에서도 특별한 제스처나 할머니 흉내를 내기보다는 윤여정답게 자유롭게 직설화법으로 “할머니 같은 게 뭔데?”라고 외치며 전형적인 대사와 캐릭터를 탈피하며 자유로운 연기를 펼쳤다.

손자에게 화투를 알려주고 프로레슬링을 좋아하는, 전형적이지 않은 할머니는 정해진 감정에 익숙하기만 했던 관객 각자의 기억 속에 더욱 새로운 매력으로 작용했다.

윤여정은 ‘미나리’에서 모두가 늙어가며 느끼는 인생의 덧없음이나 회한 등에 대해서도 그대로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강인함과 당찬 매력이 윤여정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연기 인생을 이야기할 때 윤여정은 늘 솔직했다. 캐릭터는 확고하고, 그에 대한 대중의 신뢰감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시대를 잘 만난 윤여정은 지금 젊은이들보다 더 유머러스하고 센스 있고 쿨하다. ‘돌직구’ 화법은 그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품위보다는 진솔하고 자신을 낮추지 않는 점에 젊은이들은 환호한다.

외신들도 윤여정에 주목하고 있다. 많은 외신들이 윤여정의 수상 소식을 알리며 수십 년간 한국 영화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재치 있으면서 시사하는 바가 큰 캐릭터를 연기했다고 치켜세웠다.

74세의 나이에 이렇게 주목받고 인정받는 배우가 몇이나 될까. 중요한 건 여전히 관객들은 윤여정의 연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앞으로 출연할 많은 작품에서도 삶의 유한함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주눅 들지 않는 위트가 넘치는 캐릭터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아쉽지 않고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딨어?” 윤여정의 이런 멘트는 모든 이들의 삶을 대변하는 듯 하다. 누군가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슬픔을 보듬는 커다란 캐릭터들을 그는 해오고 있다.

과감하면서도 도발적이고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이미지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윤여정의 연기 생명력은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편견에 맞서 싸우고 헤쳐가며 스크린을 통해 대중에게 더욱 더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다.

상업영화에 찌들어 있는 요즘 세상에 연기를 위해서라면 독립영화와 저예산 영화 등을 구분하지 않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좋은 독립영화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윤여정의 작품 사랑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70대의 윤여정은 앞으로도 도전하고 시도하며 편견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통해 우리에게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연기로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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