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왼쪽)이 25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최우수 여우 조연상을 받고 기자실에서 배우 브래드 피트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배우 윤여정(왼쪽)이 25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최우수 여우 조연상을 받고 기자실에서 배우 브래드 피트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오스카상만큼 뜨거웠다.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74)의 솔직하고 재치 있는 입담은 좌중을 들었다놨다 했다. 어쩔 땐 유쾌하게 웃음을 주고, 때로는 현지인들의 허를 찌르기도 했다.

배우 윤여정은 25일 제93회 오스카상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마리아 바카로바(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 아만다 사이프리드(맹크), 올리비아 콜맨(더 파더), 글렌 클로즈(힐빌리의 노래)를 꺾고 당당히 정상에 선 것이다. 그런데 상도 상이지만, 윤여정에게 영화 관계자와 전 세계인이 깊게 빠져든 것은 어느 질문이든, 어느 순간이든 막히지 않고 표현하는 그의 노련한 입담 때문이었다. 

◆“브래드 피트, 드디어 만나네요”

이번 여우조연상 시상은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의 몫이었다. 브래드 피트는 '미나리' 제작사 플랜B 대표이기도 하다. 브래드 피트는 이날 수상자로 윤여정의 이름을 호명했고 윤여정은 “브래드 피트, 마침내 만나서 반갑다(Finally nice to meet you). 우리가 영화 찍을 때 어디 계셨나요?”라고 콕 집는 유머를 던져 한바탕 좌중을 폭소케 했다.

◆“두 아들이 나에게 일하러 가라고 종용”

시상식 소감 발표에서 윤여정은 자리에서 두 아들과 김기영 감독에게 감사함을 표현했다. 특히 그는 “두 아들에게 감사하다. 두 아들이 나에게 일하러 가라고 종용했다. 아이들의 잔소리 덕분이다. 열심히 일했더니 이런 일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살던 대로 살아야죠, 오스카 탔다고 김여정 되는 것 아냐”

시상식 이후 기자회견에서 윤여정은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서 “앞으로 계획은 없다. 저 그냥 살던 대로 살겠다. 제가 오스카상을 탔다고 그래서 윤여정이 김여정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브래드 피트 냄새? 난 개가 아니야”

윤여정은 외신의 무례한 질문에 위트있게 응수하기도 했다.

‘브래드 피트에게서 어떤 향기가 났느냐’는 질문에 윤여정은 “난 개가 아니다. 그의 냄새를 맡지 않는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브래드 피트는 나에게도 스타다. 브래드 피트가 내 이름을 틀리지 않으려고 많은 연습을 한 것으로 안다. 나를 안내해주고 내 이름을 불러줬다는 게 믿을 수 없었다”며 감격해 했다.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에 도착, 레드카펫에 올라 웃음 짓고 있다. (출처: 뉴시스)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에 도착, 레드카펫에 올라 웃음 짓고 있다. (출처: 뉴시스)

◆“‘최고(最高)’는 싫어, 다 같이 ‘최중(最中)’ 하면 안 되냐”

‘지금이 배우 윤여정에게 최고의 순간인가’라는 질문에 “최고의 순간은 없을 것 같다. 나는 최고 그런 말 참 싫다. 너무 1등, 최고(最高) 그런 거 말고 다 같이 최중(最中)하면 안 되겠느냐”고 소신있는 발언을 했다.

◆“그만 좀 과장하세요”

앞서 영화 ‘미나리’를 연출한 리 아이작 정(한국명 정이삭)은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윤여정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난 그를 보물로 생각했고, 그가 우리의 비밀무기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정말로 경이적이고 진짜 천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윤여정은 “좀 그만하세요. 정 감독의 과장이다. 정 감독이 저렇게 과장하는 것은 처음 봤다”고 말하며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아주 고상한 척(snobbish)하는 영국인, 나 좋아해”

지난 11일(현지시간) 윤여정은 2021년 영국 아카데미상 비대면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지목됐다. 윤여정은 이날 수상 소감에서 “아주 고상한 척(snobbish)하는 영국인들이 나를 좋은 배우라고 인정해 준 거니 영광이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순간 시상식 분위기가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기습을 당한 영국인들은 웃느냐고 정신 없었다. 

◆“나는 늙은 여배우, 힘든 건 하기 싫어”

세계가 윤여정의 재치있는 입담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은 아카데미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지난해 ‘선댄스영화제’ 무대인사 현장에서였다. 이날 윤여정은 “난 한국에서 오랫동안 연기를 했지만, 이 영화는 사실 하기 싫었다. 신인 감독과의 작업인 데다 독립영화였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고생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영화가 잘 나왔다. 나는 늙은 여배우니까 이제 힘든 건 하기 싫다. 그런데 정이삭 감독이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며 솔직한 감정 표현으로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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