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흥 전 원장이 성균관 대성전에서 활짝 웃고 있다.ⓒ천지일보(뉴스천지)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 석전 보유자 권오흥 전(前) 석전교육원 원장

성균관엔 ‘석전(釋奠)’이란 의식이 있다. 이 석전은 후학들이 성현의 가르침을 본받고 다짐하는 의례의식으로, 매년 봄·가을 두 차례 석전이 봉행된다.

정부는 1986년 성균관에서 봉행하고 있는 ‘문묘석전’을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했다. 이후 성균관은 자체적으로 전승인재를 양성하다 2004년에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대학과정 학위제도를 설치한 석전교육원을 개교했다.

석전대제 계승발전에 필요한 인재양성과 국가사회의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전통 예술학사를 배출하는 석전교육원의 권오흥 전(前) 원장을 만나 한평생 유림으로 살아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통적 유학자 가문서 태어나
권오흥(사진) 전(前) 원장은 전통적인 유학자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21대조 권보 선생은 고려 충렬왕‧충숙왕 때의 문신으로, 충숙왕 때 민지와 함께 고려 태조 이래 실록을 편찬했으며 <주자사서집주>를 간행, 주자학 발전에 공헌했다. 그의 조부 권태선은 1910년 경술국치 때 관직을 버리고 부여 고향으로 돌아와 국권을 되찾는 일에 몰두했으며 특히 고향에 서숙(書塾)을 세워 후세 교육에 힘썼다.

이러한 전통적 유학자 가문에서 태어난 권 전 원장은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 우애 있으며 국가에 충성하는 것’과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지키면 가장 이상적인 사람이라고 배워왔다.

인의예지 가운데 의에서 우러나오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권 전 원장은 “사람이 잘못하면 미워해야 하는데 요즈음은 미워하지 않는다. 잘못하면 일벌백계해야 하는데 뇌물 먹고 야합하면서 무마되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다”며 우려했다.

그는 “돈 가지고 나쁜 짓을 합리화 시키는 것은 의가 무너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수오지심을 갖는다면 사회는 맑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충(忠)’이란 임금이나 국가에 대해 생명을 바치는 것이라고 가르쳐 왔지만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라는 견해를 나타냈다.

그는 ‘충’이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걱정하고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다른 해석을 내놨다. 즉, 지각 있는 사람이 지각없는 사람을 보살피고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는 ‘효(孝)’에 대해서도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한다는 뜻이 아닌 나를 있게 한 모든 존재 즉, 하늘과 땅, 모든 자연에 보답하는 감사의 마음을 말한다고 했다.

◆점차 사라지는 선비정신
그는 건축물이란 사람이 사용하지 않으면 쉽게 망가지는 법이니 향교‧서원 등 유형문화재를 효과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할 수 있게 문화‧역사의 교육공간으로 활용하자고 말했다. 즉, 국가가 전문가를 투입해 향교‧서원 등 교육공간을 통해 국민을 교화하고 민족정신을 고취하며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균관 명륜당 사용을 정부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권 전 원장은 “명륜당은 선조들의 정기가 서려있고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산 교육장이다. 이곳을 교육장소로 활용한다면 엄청난 교육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건물은 사람의 채취가 있어야 보존이 잘 된다. 명륜당을 비롯한 향교‧서원 등을 교육기관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며 위정자들이 문화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길 바랐다.

그는 또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의 의미는 원형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홀기(笏記, 의식이 진행되는 순서 및 내용을 기록해놓았던 문서)를 못 알아듣는다며 쉽게 고쳐서 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권 전 원장은 “모른다고 수준을 내리면 야만이 된다”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옛날이 오히려 더 문명시대라 볼 수 있다. 지금은 동서양 문명이 혼합돼 우리의 독특한 문화가 약화 또는 몰이해되고 있다”면서 “현대인들에게 원형이 잘 보존된 전통문화를 이해시키고 알아들을 수 있는 교육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석전은 제사라기보다는 공자의 학덕을 기리고 나도 그런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경축행사라는 게 권 전 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석전의 음식은 익히지 않고 생식으로 만든다.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그 기운을 취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석전의 음식은 신선한 것으로 만들며 석전에 올릴 가축은 정성을 다해 기른다”고 말했다.

그는 “생식 즉, 혈식(血食)을 받기 위해서는 공자처럼 학덕이 높아야 하고 고상하게 살아가야 하며 또 비굴하지 않고 옳은 일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선비는 국가의 원기(元氣)인데 요즈음 선비를 찾아보기 힘들다”며 권 전 원장은 안타까워했다.

 

▲ 지난 3월 7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제10회 '3.1정신 범민족대회'에 내빈으로 참가한 권오흥 전 원장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는 “선비가 없다는 것은 국가에 원기가 없다는 뜻이다. 또 선비가 있어도 선비를 몰라보는 세상이 됐다”면서 “그러니 선비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부회뇌동하고 어떤 삶이 의로운 것인지도 구분 못 한다”고 질책했다. 그러면서 “금(金)은 흙탕물 속에서도 오염되거나 변질되지 않는다. 금은 절대로 썩지 않으니 금 같은 사람이 되라”며 이것이 공자의 가르침이라고 조언했다.

점차 사라지고 있는 선비정신을 아쉬워하던 그는 “선비가 지조를 지킬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돼야 하는데 그 지조가 굴절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서글프다”면서 국민의 수준이 높아져서 선비들이 지조를 지킬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얘기했다.

가정은 ‘학교’“ 유교 교육 필요해”
권 전 원장은 가정을 ‘학교’라고 정의했다. 부모는 선생님이고 조부모는 교장선생님이라는 것이다.

좋은 집안은 좋은 내력과 훌륭한 조상이 있고 분위기가 다르다는 말도 덧붙였다. “좋은 집안을 만들면 좋은 나라가 된다”고 말하는 그는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요즈음 부모는 인의예지 공부를 안 한다”며 오늘날이야말로 절실히 유교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인성을 회복하고 바른 사람을 만드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유교를 배워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마지막으로 지도자는 무릇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고 자기 말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면서 우리의 역사를 알고 또한 세계사를 알며 세계의 우열은 어떤 관계 속에서 발생되는가를 알아 ‘우(優)’로 이끄는 자가 지도자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약력>
유교학회 이사 역임
성균관 전례연구상임위원 역임
성균관 총무처장 역임
학점은행제 성균관 석전교육원 설립 원장 겸 교수취임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대통령)
명륜대 출강(현)
중요무형문화재 제 85호 석전대제(집례) 예능보유자 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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