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용수 할머니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기일을 마친 뒤 입장을 밝히기 위해 청사를 나서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는 이날 이 할머니와 고 곽예남, 김복동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2021.04.21.
[서울=뉴시스] 이용수 할머니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기일을 마친 뒤 입장을 밝히기 위해 청사를 나서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는 이날 이 할머니와 고 곽예남, 김복동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2021.04.21.

타국 법정서 재판 받지 않는다는 국가면제 권리 인정

화해·치유재단을 대체적 권리구제수단으로도 판단

“1억 지급하라”던 1차 재판 승소 내용과 정반대 결과

문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서 “위안부 판결 곤혹스러워”

“2015년 위안부 합의, 양국 정부 공식 합의 인정”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두 번째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 1차 소송과는 정반대 결론에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친 게 아니냔 분석도 나온다.

22일 법원에 따르면 전날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민성철 부장판사)는 21일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를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본안 판단 없이 재판을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재판부가 이 같은 판단을 내린 이유는 ‘국가면제’ 원칙 때문이다. 국가면제란 주권국가는 타국 법정에서 재판 받을 수 없다는 원칙이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7일 헌법재판소가 2015년 박근혜정부가 일본정부와 발표한 ‘한일위안부 합의’에 대한 선고를 내렸다. 헌재는 이날 위안부 피해자 등 41명이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청구를 각하했다.헌재는 “해당 합의는 단순히 정치적 합의일 뿐 이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정치영역에 속한다”고 각하 결정에 대한 이유를 밝혔다. 각하는 소송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경우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내리는 처분이다.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의 모습. ⓒ천지일보 2019.12.27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019년 12월 27일 헌법재판소가 2015년 박근혜정부가 일본정부와 발표한 ‘한일위안부 합의’에 대한 선고를 내렸다. 헌재는 이날 위안부 피해자 등 41명이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청구를 각하했다.헌재는 “해당 합의는 단순히 정치적 합의일 뿐 이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정치영역에 속한다”고 각하 결정에 대한 이유를 밝혔다. 각하는 소송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경우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내리는 처분이다.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의 모습. ⓒ천지일보 2019.12.27

◆3개월 사이에 달라진 법원 판단

하지만 지난 1월 민사합의34부(김정곤 부장판사)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의 국가면제권을 부정하며 “원고들에게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고 승소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이 사건은 피고에 의해 계획·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행위로 국제 강행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국가면제는 적용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일본 정부에 대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재판 결과는 일본 정부가 항소하지 않으면서 그대로 확정됐다. 다만 법원 인사로 재판부가 변경되면서 이 판결을 내린 민사합의34부의 재판장이 김양호 부장판사로 바뀌었고, 판결 내용에도 변경이 생겼다.

김양호 부장판사가 이끄는 민사합의34부는 지난달 29일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 그동안 체결된 이른바 한일청구권협정, 위안부 합의 등 각종 조약과 합의, 각국 당국이 이 사건과 관련해 한 언동에 국제법상의 금반언, 즉 ‘이전 언행과 모순되는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원칙을 더해보면 추심결정을 인용하는 것은 비엔나 협약 27조 등 국제법을 위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일본에게 소송 비용을 강제집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왜 3개월 사이에 유사한 내용을 두고 법원 판결이 달라졌을까. 먼저 재판부의 성향도 한몫 했겠지만, 최근 잇따라 유사한 판단 결과를 내면서 그 이유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분석도 제기된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가운데 시민들이 서울역 대합실에서 문 대통령의 답변을 시청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18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월18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가운데 시민들이 서울역 대합실에서 문 대통령의 답변을 시청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18

◆문대통령 “강제집행 실행 양국 관계에 바람직 안 해”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다. 1차 손해배상 소송 결과가 나온 게 지난 1월 8일이다. 그리고 열흘 뒤인 같은 달 18일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호리야마 아키코 기자가 위안부 관련 질문을 던졌고, 문 대통령은 “외교적 해결을 하기 양국이 여러 차원의 대화를 하고 있는 와중에 또 위안부 판결 문제가 더해져 솔직히 조금 곤혹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답했다.

이어 “제가 늘 조금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과거사는 과거사이고, 또 한일 간에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나가야 되는 것은 그것대로 또 해나가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있었던 위안부 판결의 경우에는 2015년도에 양국 정부 간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며 “한국 정부는 그 합의가 양국 정부 간의 공식적인 합의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도 했다.

또 “강제징용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며, 그런 부분들이 강제집행의 방식으로 그것(한국에 있는 일본 재산)이 현금화된다든지, 그 판결이 실현되는 방식은 한일 양국 간의 관계에 있어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3)가 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 촉구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천지일보 2021.2.16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3)가 2월 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 촉구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천지일보 2021.2.16

◆신년 기자회견 전후로 다른 내용의 판결

문 대통령의 이 같은 관점은 최근의 일본 정부 상대의 판결에서의 재판부들 판단과 다르지 않다.

1차 승소 내용의 일부를 뒤집어 일본에게 소송비용을 강제집행 할 수 없다는 것은 문 대통령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발언한 내용의 취지와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전날 2차 손해배상 소송에서 재판부가 2015년 위안부 합의로 탄생한 ‘화해치유재단’이 외교적 요건을 구비했고, 권리구제의 성격도 갖고 있다고 판단한 것 역시 문 대통령이 양국 간 공식 합의였다는 사실을 인정한 맥락과 다르지 않다.

재판부는 “일본 정부의 책임을 규명하지 않고,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등 내용과 절차에서 문제가 있다”면서도 “양국이 외교적으로 합의하고 일본 정부가 자금을 출현해 설립된 재단을 통해 피해자 상당수에 현금이 지급된 만큼 (재단이) 유효한 대체 권리구제수단으로 봐야한다”고 판시했다.

이와 관련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YTN에 출연해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내용이 2차 판결의 결과에 대해 끼친 영향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2015년 위안부 합의라는 건 이건 정치적인 선언이다. 일종의 문서가 있어서 양국의 외교부 장관이 사인한 게 아니다”라며 이 때문에 한국 내 재판소에서는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고 봤지만, 적어도 정부 간 합의라는 것은 인정했다는 점에서 2차 판결이 이같이 난 것으로 분석했다.

위안부 피해자 측이 항소하기로 하고, 소송의 원고 이용수 할머니는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단을 받겠다고 나서면서 위안부 손해배상을 놓고 이후에도 많은 실랑이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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