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1.4.21
막걸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1.4.21

문헌 속 ‘탁주·박주’로 불려

춘향전에는 한글로 표기돼

생업·의례·경조사 뿐 아니라

‘신주’로서 개업식에도 쓰여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문화’는 그 나라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삶이자 정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선조들이 대대로 지켜온 소중한 문화는 하나둘씩 국가문화재로 지정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막걸리 빚기 문화’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돼 주목받고 있다. 이번 지정 예고의 대상은 막걸리를 빚는 작업은 물론이고, 다양한 생업과 의례, 경조사 활동 등에서 나누는 전통 생활관습까지를 포괄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역사 속에 담긴 막걸리에 대해 알아봤다.

◆농번기 농민 애환 달래

막걸리는 찹쌀·멥쌀·보리·밀가루 등을 쪄서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한국 고유의 술이다.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민속주이기도 하다. 막걸리의 ‘막’은 ‘함부로’ ‘빨리’를 뜻한다. ‘걸리’는 ‘거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니 막걸리는 ‘거칠고 빨리 걸러진 술’이 된다. 막걸리는 만드는 방법이 간단하다. 물과 쌀, 누룩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으니 자연스레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술의 대명사가 됐다.

막걸리 발효 과정을 보면 위는 맑고, 아래는 술지게미(곡물찌꺼기)가 가라앉아 있다. 위에 맑은 것은 청주로 쓰이고, 막걸리는 청주를 분리하지 않은 채 걸러서 만드는데, 청주와 대비되는 말로 ‘탁주’라고 불렀다. 막걸리는 청주보다 색이 흐리고 텁텁한 맛을 가지고 있다.

농사꾼들 사이에서는 “같은 품삯을 받더라도 새참으로 나오는 막걸리가 맛있는 집으로 일하러 간다”라고 할 정도로 농번기에는 농민의 땀과 갈증을 해소하는 ‘농주(農酒)’로 역할을 했다.

막걸리는 삼국 시대 이전 농경이 이루어진 시기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 보면, ‘미온(美醞)’ ‘지주(旨酒)’ ‘료예(醪醴)’ 등 막걸리로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이 확인된다.

고려 중기, 송나라 한 사절이 고려를 방문한 후 적은 견문록인 ‘고려도경’에 보면 “왕이나 귀족들은 멥쌀로 만든 청주를 마시는데, 백성은 맛이 짙고 빛깔이 짙은 술을 마시는 데 잘 취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술의 빛깔이나 도수가 낮은 점 등을 볼 때 당시에 탁주가 서민의 술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당대 문인들도 문집에 막걸리로 추정되는 용어를 사용했다. ‘도은집(陶隱集)’에는 탁주(濁酒), ‘동문선(東文選)’에는 박주(薄酒) 등이 기록돼 있다. 또 고려 후기 문신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는 ‘백주’라는 단어가 기록돼 있다. 내용을 보면 “젊었을 때는 백주를 즐겨 마셨으나 벼슬길에 오르고는 청주를 마시게 되었다. 청주가 없을 때는 부득이 백주를 마시는 데 위에 차서 배가 부르니 불쾌하다”라고 기록돼 있다. 

조선 시대 ‘춘향전’ ‘광재물보(백과사전류)’에서는 ‘목걸리’ ‘막걸니’ 등 한글로 표기된 막걸리를 찾아볼 수 있다. 또 ‘규합총서(閨閤叢書)’ ‘음식디미방’을 비롯한 각종 조리서에도 막걸리 만드는 방법이 고스란히 담겼다.

조선 최고의 화가인 김홍도 '단원 풍속도첩' 주막 (제공:국립중앙박물관)ⓒ천지일보 2021.4.21
조선 최고의 화가인 김홍도 '단원 풍속도첩' 주막 (제공:국립중앙박물관)ⓒ천지일보 2021.4.21

◆누구나 즐기는 대중적인 술

농경문화가 정착된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술이 전래돼 왔다. 조선시대까지 집집마다 집안의 풍속을 잇는 가양주(家釀酒)가 내려왔다. 막걸리는 김치, 된장처럼 각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먹던 발효음식 중 하나였다. 1909년 주세법이 공포된 후 1934년 집에서 술을 제조하는 것을 금지하게 돼 수천 가지의 가양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그러다 1995년 자가양조가 허용됐고 가양주가 하나둘씩 생겨났다. 2000년대 이후에는 막걸리 열풍이 불면서 자가 제조도 늘고 있었다. 이처럼 막걸리는 여러 환경 가운데에서 당당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막걸리는 예로부터 마을 공동체의 생업·의례·경조사에서 빠지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막걸리는 ‘신주(神酒)’로서 건축물의 준공식, 자동차 고사, 개업식 등 여러 행사에 제물로 올리고 있다.

한편 ‘막걸리 빚기 문화’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한반도 전역에서 전승·향유되고 있다는 점’ ‘삼국 시대부터 각종 고문헌에서 막걸리 제조방법과 관련된 기록이 확인되는 점’ 등 전통 지식의 전승·유지되는 점에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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