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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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만, 정약전은 흑산도에 유배 가서 동생 정약용처럼 책을 쓰지는 않는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책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약용이 쓰는 책들과는 다른 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즉 흑산도 앞바다에서 사는 물고기에 대해서 연구하고 이를 책으로 남기려고 한다. 자신이 직접 하나하나 물고기와 바다생물을 보거나 묻고 자료를 찾아서 정리하는 작업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강진에 유배됐던 정약용은 형처럼 자연의 바다에 눈길이 가 있지 않았다. 수많은 책들의 숲, 아니 고문헌들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비록 그는 서울에서 멀리 바닷가에 유배는 떠나 있었지만, 인간 세상에 여전히 눈과 붓이 가 있었다. 그것을 말하자면, ‘관계’에 대한 주목이었다. 임금과 백성의 관계, 관리와 백성의 관계는 물론이고 사회적 국가적으로 어떻게 통치할 수 있을지 그 관계성에 주목했다. 요컨대, 세상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 밖으로 나간 적이 없는 정약용이었고 이에 관한 책 500권을 집필한 그였다. 하지만, 정약전은 수많은 바다생물 자체를 다루었지만, 2차 저작이 아니라 직접 대한 원자료들을 직접 연구 정리했다.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있다면 겨우 한 명 정도였다. 반면, 제자들이 많이 조력할 수 있었던 정약용과는 상황이 달랐다.

그 책을 쓰는 데도 정약용과 달리 느렸다. 강진의 유배 생활보다 흑산도의 유배 생활이 더욱 혹독했던 것일까. 아쉽게도 정약전은 유배에서 풀려나지도 못하고 절해고도에서 세상을 떠난다. 그래도 책은 전해진다. 그런데 개봉영화 ‘자산어보’에서는 정약전이 쓴 책이 깨끗한 상태로 그냥 전해진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한 장씩 한 장씩 뜯겨서 어느 섬집의 벽지로 사용되고 있었다. 15년간 유배 생활 내내 연구한 책이 그 책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해 그냥 벽지로 사용된 것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정약전의 연구는 자연과학이다. 이 자연과학의 계보가 조선에서 중심이 됐다면 조선은 물론이고 한국의 미래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 속에서 백신의 효과가 위력을 드러내고 있다.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것이 어떤 상황인지 영국과 이스라엘 등 선진국과 비교 대상이 되고 있다. 장기화 될수록 사회적 거리두기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국민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가중시킨다는 점에서 모두 실제 느끼는 바이다. 비약일 수 있지만, 정약용이 주로 남이 쓴 고문헌의 바다에서 관계에 철학과 사상을 넘어 정약전처럼 자연에서 그 원리를 직접 궁구했다면 바이러스 백신 기술 면에서 한국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다만 벽지로 발라져 있는 자산어보를 발견한 것은 동생 정약용이었다. 하지만 형이 쓴 것이었기 때문에 그 책을 소중히 간직했을 수도 있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해양 생물을 연구한 결과물이었다면 그나마 지금에 자산어보가 전해질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자산어보의 내용의 탁월성이 아니라 정약전이 보여준 연두 태도와 연구 분야에 대한 인식의 계승일 것이다.

또 하나 자산어보에서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서문에 언급된 사람의 이름이다. 바로 창대, 장창대라는 청년이다. 대개 자신에게 조력을 해준 사람의 이름은 쓰지 않는다. 혼자만의 성과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정약용의 책들은 정말 제자들이 있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제자들은 공동저자로 이름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정약전은 창대라는 인물에 대해 자세하게 말하고 있으니 공동저자 이상이다. 아무리 하찮은 사람의 도움이라도 밝혀주는 연구 문화가 확립되었다면 조선은 나라를 잃지 않고, 한국은 이미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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