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술 정치컨설팅 그룹 인뱅크코리아 대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7~18일 김황식 국무총리를 비롯해 각 부처 장차관, 청와대 실장 및 기획관 등 전 부처가 참여하는 ‘내수 활성화 국정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서민경제에 대해 하늘을 찌를 듯 불만이 많다”며 체감경기 개선을 위한 내수활성화 대책을 주문했다고 한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민 10명 중 9명이 경기가 더 나빠졌다는 여론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경제지표는 좋아졌지만 실제 국민이 느끼는 내수경기는 그야말로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국정토론회’에서 정부 대책의 주요 내용은 골목경기 개선과 국내 관광활성화에 맞춰졌다. 이에 대한 구체적 방안으로서 정부는 우선 ‘노는 시간’을 늘려 소비를 증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근무시간을 현행 오전 9시~오후 6시에서 오전 8시~오후 5시로 1시간 앞당겨 소비를 늘려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민원인들이 받아야 하는 불편은 차제하더라도 공무원들의 ‘노는 시간’을 한 시간 늘렸다고 내수경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믿는 서민은 없을 듯싶다. 내수시장이 망가진 이유가 공무원들이 퇴근을 일찍 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는 시간을 범국민적으로 확산시키고자 초중고 겨울방학을 줄이고 봄․가을방학을 신설해 여가활용 시간을 늘릴 계획이라는 것은 서민입장에서는 더 환장할 노릇이다. 이미 가계부채가 국가적 재앙을 불러올 수 있을 만큼 위험수위에 도달했는데, 내수시장을 진작시키겠다고 서민들까지도 돈을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게 되면 더 많은 가계부채 증가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서민들에게 있어서 아이들의 노는 시간 증가는 사교육비 부담으로 직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는 시간 증가가 서민들에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지금 내수경기 진작을 위해 진짜 돈을 풀어야 하는 집단은 서민이 아니라 대기업이란 말이다.

이날 토론회 중에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논의를 빼면 이 상황을 타개할 만큼의 정부 정책은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토론자 대부분이 부자들이니 서민의 입장을 모르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서민이 아닌 분들이 책상에 앉아 만든 정책인 만큼 이제는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그만큼 체념이 앞선다는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심각하게 꺼낸 말인데 좀 더 서민들이 무엇 때문에 분노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정도는 말해주길 기대했었다.

지금 국민들이 경기가 나쁘다고 인식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고(高)물가 때문이다. 소득은 별반 차이가 없는데 물가는 급등해 지출이 증가했으니,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식료품 구입비 등의 증가가 결국 외식비나 문화비의 감소로 이어진 것이다. 이것이 악순환 되어 음식점 등의 소상공인은 더 장사가 안되는 것이며 중소기업 제품이 더 안 팔리게 되는 것으로 계속 뫼비우스의 띠처럼 악순환 되는 것이다. 이렇듯 체감경기의 가장 큰 적은 고(高)물가로 인한 폐해다. 그렇다면 이날 토론회에서 최소한 물가잡기에 대한 대책이 먼저 나왔어야 옳다. 땜질식 공무원들의 출퇴근 시간 조정이 아니다.

얼마 전 필자의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시장에 가면 물가가 비싸서 물건 사기가 겁났는데 미장원도 덩달아서 올리네요. 원가 상승요인이 없는 미장원이 왜 이발 요금을 올리냐고 했더니 다른 물가도 오르니 우리도 올린다고 해요.” 정부 당국자는 필자의 아내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의 물가는 도미노처럼 빠르게 곳곳에서 오르고 있다. 6000원 하던 이발요금이 7000원으로 올랐다. 하지만 그깟 1000원밖에 안 올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를 수치로 환산하면 이발요금의 상승률은 17%가 오른 것이기 때문이다. 여의도 인근 식당에서 5000원짜리 밥이 사라진지는 벌써 오래된 얘기고 6000원짜리도 사라져 가고 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그깟 돈 천원으로 치부에 버리겠지만 서민에게 있어서 천원은 소득이 17% 감소한 것과 같다.

내수경기 파탄의 또 다른 원인은 현 정부의 성장정책으로 인해 대기업은 더 많은 돈을 벌었고 그렇게 번 돈을 사회에 환원시키기는커녕 그 돈으로 서민들의 생계마저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기업의 문어발식 서민생계형 사업확장으로 그야말로 서민 시장경제는 파탄의 위기에 몰렸단 말이다.

떡볶이 시장마저도 넘보는 지금의 대기업이 문방구며 피자며, 동네 마트며, 호프집마저도 침투하지 않은 곳이 없다. 상황이 이쯤 되었는데 그깟 공무원이 한 시간 먼저 퇴근한다고 내수 경기가 살아나기야 하겠는가 말이다. 국민 10명 중 9명이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것을 허투루 들으면 정부와 한나라당은 공멸할지도 모른다. 부자들로 구성된 토론회는 기대할 것도 없고 기대할 만한 대책도 없다. 차라리 개그콘서트를 봐야겠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