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 하면 된다.” 인류에게 평화실현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품게 한 이가 있다. 바로 유엔등록 평화단체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다. 그는 “전쟁없는 평화세상을 이루라”는 천명(天命)을 받들어 여든이 넘은 나이에 31차에 걸쳐 지구촌 평화순방에 나섰다. 국내에선 몰라주고 알아도 애써 외면하지만 이만희 대표는 분명 세계적 차원의 인재다. 어느 한 나라가 아니라 온 세계가 참된 평화운동가로 인정한 인재가 대한민국에서 났고 대한민국을 빛내고 있어도 자기 생각에 염색되고 혜안이 없어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평화순방 동안 이만희 대표가 받은 각종 상패와 증서 등을 통해 세계가 그를 어떻게 여기고 주목해 왔는지를 객관적으로 살피고 확인하는 코너를 마련했다. 또 앞으로 전개될 그의 평화행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장 맥스 라코토마몬지 마다가스카르 국회의장이 이 대표에게 전달한 감사패. 이 감사패에는 “평화의 아버지로서 헌신과 희생으로 세계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해주신 이 대표님께 감사를 표한다”고 명시됐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4.19
장 맥스 라코토마몬지 마다가스카르 국회의장이 이 대표에게 전달한 감사패. 이 감사패에는 “평화의 아버지로서 헌신과 희생으로 세계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해주신 이 대표님께 감사를 표한다”고 명시됐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4.19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 자료공개<18>

HWPL과 인연 맺은 라코토마몬지 마다가스카르 국회의장

2016년 평화 만국회의 2주년 기념식 참석해 야외 공연에 감격

이후 HWPL 평화운동 동참… 3주년 기념식서 이 대표에 감사패

아프리카 55개국 연합 입법기관 PAP와 HWPL MOU 체결 중재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자 사회주의공화국인 마다가스카르 국회는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의 평화운동에 열광했다. 특히 HWPL이 한국에서 개최한 2014년 평화 만국회의를 매년 기념하는 기념행사에 참석해 온 지구촌이 평화로 하나된 모습을 지켜본 마다가스카르의 정치인은 감탄했다.

장 맥스 라코토마몬지 마다가스카르 국회의장은 이 대표의 이 같은 평화운동에 감동해 2017년 9월 18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인터컨티넨탈에서 열린 제3주년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에 참석해 이 대표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2017년 9월 18일 장 맥스 라코토마몬지 마다가스카르 국회의장이 서울 강남구 그랜드인터컨티넨탈에서 열린 제3주년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에 참석해 이만희 대표에게 평화운동에 대한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4.19
2017년 9월 18일 장 맥스 라코토마몬지 마다가스카르 국회의장이 서울 강남구 그랜드인터컨티넨탈에서 열린 제3주년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에 참석해 이만희 대표에게 평화운동에 대한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4.19

라코토마몬지 국회의장은 이 감사패를 통해 이 대표가 평화를 위해 헌신해온 것과 자신을 만국회의에 초청해 평화의 일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해준 데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고, 자신도 평화의 사자로서 HWPL의 평화의 일에 협력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감사패를 전했다. 이 감사패에는 “평화의 아버지로서 헌신과 희생으로 세계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해주신 이 대표님께 감사를 표한다”고 명시됐다.

라코토마몬지 국회의장은 평화 만국회의 3주년 기념식에서 자신이 전년도에 열린 제2회 평화 만국회의에 참석했다고 밝히면서 “작년과 올해를 비교하자면, 축제는 당연히 완벽했고, 퍼포먼스와 퍼레이드가 더욱 발전된 것을 봤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경기장 화면으로 보았듯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함께 이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보며 평화운동이 더 널리 퍼져 나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퍼포먼스와 퍼레이드는 놀랍게도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2017년 9월 18일 제3주년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장 맥스 라코토마몬지 마다가스카르 국회의장이 참석 인사들과 함께 세계 지도풍선을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4.18
2017년 9월 18일 제3주년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장 맥스 라코토마몬지 마다가스카르 국회의장이 참석 인사들과 함께 세계 지도풍선을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4.18

 

라코토마몬지 국회의장은 앞서 2016년 평화 만국회의 2주년 기념행사 참석 인사로 초청된 후 HWPL의 평화활동을 눈여겨 지켜봤다. 그는 HWPL의 산하기관인 국제청년평화그룹(IPYG) 청년들의 자발적인 평화활동에 감명을 받았고, 이후 HWPL의 여러 행사에 참여했다. 그는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선언문(DPCW 10조 38항)’에 대한 개인지지서신을 작성해 전달하는 등 적극적인 지지를 표했다. 또한 같은 해인 2016년 12월에는 마다가스카르 국회 총회 일정 중 ‘HWPL 및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선언문(DPCW)’을 발표해 자국에 HWPL을 소개했다.

이후 2017년 만국회의 3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감사패를 전달했고, 이후에도 2018년 8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있었던 제29차 평화순방 고위급행사에 참석해 당시 아프리카 55개국 연합 입법기관인 범아프리카 의회(Pan-African Parliament) 의장이었던 로저댕을 통해 HWPL과 PAP 간 MOU를 체결하는 데 도움을 줬다.

2017년 9월 18일 경기도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제3주년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저녁 프로그램으로 대동제가 진행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4.18
2017년 9월 18일 경기도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제3주년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저녁 프로그램으로 대동제가 진행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4.18
2016년 9월 18일 제2주년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에서 HWPL 회원들이 참석 인사들이 직관적으로 평화에 대한 염원을 공감할 수 있도록 ‘DPCW 10조 38항’을 퍼포먼스로 만들어 공연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4.18
2016년 9월 18일 제2주년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에서 HWPL 회원들이 참석 인사들이 직관적으로 평화에 대한 염원을 공감할 수 있도록 ‘DPCW 10조 38항’을 퍼포먼스로 만들어 공연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4.18

마다가스카르와 한국의 친선도 이후 한발짝 더 진보했다. 라코토마몬지 국회의장은 2018년 12월 주 마다가스카르 임상우 한국대사와 만나 마다가스카르 의회 내 한-마다가스카르 의원친선협회 발족 추진을 제안했다. 임 대사는 이를 환영했고, 국회 내 친한의원 그룹을 조직해 향후 한국 관련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데 당협회가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 같은 우호 관계는 마다가스카르에 한류를 일으키는 데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마다가스카르와 한국

아프리카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는 최근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류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9년 창원에서 열린 ‘케이팝 월드페스티벌’에서는 ‘오메가 에보’라는 마다가스카르 팀이 결선에 진출했는데, 이들은 현지에서 무려 100: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우승해 한국에 온 것이었다. 이들은 490:1이라는 엄청난 예선 경쟁률을 뚫었고,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결선에 진출해 사전신청한 160개 팀 중 최종 13개 팀에 포함돼 우정상까지 수상했다. 한국대사관은 마다가스카르 최고의 대학인 안타나나리보 국립대학교에 세종학당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인도양 지역에서 최초로 설립되는 한국어 학당이다.

ⓒ천지일보 2021.4.19
ⓒ천지일보 2021.4.19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 대륙 남동 해안 앞바다에 있는 인도양 남서부의 섬나라다. 수도는 안타나나리보이다. 농업이 주요산업이지만 급속한 인구증가로 주요 식량의 대부분을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며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세계 최하위권에 속하지만 전 국민의 65%가 25세 이하인 ‘젊은’ 국가이다.

마다가스카르는 ‘혁명수호를 위한 국민전선(National Front for the De-fense of the Revolution/NFDR)’이 통치하는 일당제 사회주의공화국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마다가스카르는 프랑스 의회에 대의원을 보내는 프랑스 공화국의 해외영토가 됐다. 이후 1958년 프랑스는 마다가스카르의 자치를 허용해 자치공화국을 이뤘고, 1977년에는 혁명수호를 위한 국민전선이 정부 통제권을 잡았다.

마다가스카르와 한국은 1962년 6월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했고, 8월 주 프랑스 대사가 마다가스카르 대사를 겸임하게 됐다. 그러나 1970년대 마다가스카르에 친공산주의 성향의 군정이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와 관계가 멀어져 결국 1972년 7월에 외교관계가 단절됐다. 이후 소련 붕괴와 냉전 종식의 영향으로 1993년 5월에 다시 수교했다. 2016년 7월에 주 마다가스카르대사관 공관이 설치됐고, 마다가스카르는 주 일본대사가 한국 대사를 겸임하고 있다.

한국은 마다가스카르에 1993년부터 2016년까지 무상 715만 달러, 유상 1816만 달러의 정부개발원조(ODA)를 지원해왔다. 마다가스카르는 북한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1976년, 1978년에 라치라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은 1974년과 1978년에 각각 물자원조와 군사원조를 제공했고, 1980년대에 들어서는 군사 및 미곡 생산 전문기술인력을 파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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