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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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현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고위 인사들은 한미동맹에 대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을 자주 했다. 어느 나라든 정부와 여권 인사들이 어떤 이슈에 대해 표명한 견해를 그 윗선 나아가 대통령, 총리 등 정부 수반이 명시적으로 부인하거나 바로잡는 일이 없으면 대내외적으로 그 나라의 뜻이 그런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상식이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말과 정부 및 여권 인사의 말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 한 마디로 현 정부의 한미동맹에 대한 견해가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방한한 미국 국무‧국방 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한·미 양국은 민주주의와 인권 등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는 70년 동반자로서 공동의 도전에 함께 대처해 나갈 것이며,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의 핵심축으로서 한미동맹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라고 했고 이전에도 그러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런데 대외정책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은 한미동맹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나?

먼저 이수혁 주미대사는 작년 10월에 “한국은 70년 전에 미국을 선택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70년간 미국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 국익이 돼야 미국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외교부 소속으로서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싱크탱크인 국립외교원의 김준형 원장은 최근 출간한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에서 한미 동맹 관계를 ‘가스라이팅(gaslighting·타인의 심리를 조작해 그 사람을 지배하는 행위)’에 비유하고, ‘동맹 중독’ 등으로 표현했다. 또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주평통 부의장은 최근 미국 의회 인권위원회가 대북 전단 금지법 청문회를 추진 중인 것에 대해 지난 12일 “일종의 내정간섭이며 청문회 개최일인 4월 15일은 김일성 생일이라면서 그 의도가 불순하다”라고 했다. 한편 현 정부의 외교정책 멘토로 알려진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지난 11일 외신 인터뷰에서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이 미국 편에 서는 경우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담보할 수 없게 된다면서 하나의 진영에 속하지 않는 ‘초월적 외교’가 한국의 나아갈 길이라고 했다. 게다가 그는 작년 12월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에서 열린 미국 및 중국 학자가 참석한 행사에서 ‘북한 비핵화가 안 된 상태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중국이 ‘핵우산’을 제공할 수 있느냐?’고 중국 참석자에게 질문하기도 했다. 이러한 발언들에 대해 소위 윗선에서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고 외교부가 개인 의견일 뿐이라고 논평한 것이 전부이다. 고위직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견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백번 양보해 개인적인 견해라고 하자. 그러한 견해들은 문 대통령의 발언과는 양립하기 어렵다.

아마도 현 정부에서는 한국이 소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미·중 사이에 줄타기 외교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서로 대립하는 두 나라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그 두 나라와 국력이 엇비슷하거나 그 이상인 경우에나 가능한 것이다. 근대 유럽 역사에서 프랑스와 독일이 대립할 때 영국의 경우가 해당한다. 현재 미·중 대립 상황에서의 한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현재와 같이 한국이 미국과 거리를 두는 경우 한국의 중국에 대한 입지가 강화되는가? 중국 정부의 우리에 대한 행동은 결과가 정반대임을 보여 주고 있다. 오히려 미국과의 끈이 유지되고 있어서 중국이 한국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이다. 소위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고 중국과의 긴밀한 경제 관계를 고려하고 중국의 보복이 두려워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견해가 있으나 미국이라고 뒤끝이 없는 나라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한국은 현재 반중 연합전선의 구축을 위한, 미국의 경제· 군사·외교 분야 제의에 하나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유엔 인권이사회에서의 북한 인권 결의안 공동제안에도 참여를 거부했다. 최근 미 상원 외교위원회가 공개한 중국 견제를 위한 종합대책을 담은 ‘2021 전략적 경쟁법’은 미국 편에 서지 않는 나라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것도 거론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가 누리고 있는 한미동맹의 편익을 당연시하는 것은 위험한 착각이다. 한미동맹의 편익과 중국의 눈치를 봄으로써 기대되는 이익을 냉정하게 비교해 판단해야 할 것이다. 문정인 이사장의 ‘초월적 외교’는 한국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주장하는 듣기 좋은 소리일 뿐이다. 일부에서는 17세기 중국 명·청 교체기 광해군의 외교를 이야기하며 현 정부의 정책을 설명하는데 당시 명·청 간 역학관계와 현재 미·중 간 역학관계는 비교 자체가 적절치 않을 정도로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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