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9일 아프가니스탄 남부 헬만드주에 있는 전진작전기지 외곽에서 소형 낙하산에 실려 온 식량을 수거하기 위해 미국 해병대원이 걸어가고 있다. 이 낙하산은 땅에 닿은 후 파괴된다. (출처: 뉴시스)
2011년 6월 9일 아프가니스탄 남부 헬만드주에 있는 전진작전기지 외곽에서 소형 낙하산에 실려 온 식량을 수거하기 위해 미국 해병대원이 걸어가고 있다. 이 낙하산은 땅에 닿은 후 파괴된다. (출처: 뉴시스)

바이든, 아프간철군 공식발표

“아프간 정부 지원은 지속”

아프간 털고 중국 등 현안 집중

돌고돌아 결국 ‘정치적 해결’로

[천지일보=이솜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완전 철군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연설에서 “미국에서 가장 긴 전쟁을 끝낼 때”라며 아프간 주둔 미군의 철군을 다음 달 1일 시작해 9.11 테러 20년이 되는 올해 9월 11일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2001년 전쟁 이후 2300명 이상의 미군이 사망했고, 2만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으며 2조 달러 이상의 혈세가 투입됐다. 한때 최대 10만명까지 증파됐던 미군은 현재 2500명까지 줄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병력도 약 7천여명이 남아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성명 발표 직후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모든 병력을 철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에 군사적으로 관여하지는 않겠지만 외교적, 인도적 활동은 계속될 것”이라며 아프간 국방 및 보안군을 계속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병력은 아프간에 있는 미국 외교관을 보호하기 위해 남아있을 예정이다.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아프간의 미국 특수작전부대도 미군 정식 병력으로 포함되지 않아 거취가 불분명하다.

◆바이든의 ‘아메리카 퍼스트’

바이든 대통령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로는 일단 직면한 국내 현안에 집중해야 한다는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가 깔려있다.

탈레반은 군사력을 통해 물리칠 수 없으며 알카에다는 더 이상 미국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만한 자원이 없는 점을 주장하면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결국 “탈레반과의 전쟁보다는 현재와 향후 몇 년 동안 우리의 입지를 결정짓는 도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결정 배경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도전과 관련해 미국의 외교 정책을 재조정하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해왔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전날 “아프간에 대한 군사적 해결 방안이 없다”며 “전쟁이 시작된 지 20년 가까이 되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위협과 싸우는 데 자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란 핵개발을 주시하는 것을 제외하면 중동을 우선순위에서 격하시키려는 바이든 대통령의 방향과도 궤를 같이한다. 그는 이스라엘과 사우디 지도자들과 거리를 두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회담을 시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중동에 평화를 가져오겠다고 다짐한 그의 전임자들과는 대조적이다.

◆매번 ‘승리’ 약속만… 결과는 어디에

이번 발표는 좋게 말하면 전쟁 종언을 고한 것이지만, 결국 아프간 파병의 첫 목적이었던 군사적 해결 실패를 20년 만에 시인했다는 의미와 다름없다.

미군의 아프간 주둔은 2001년 9.11 테러로 시작됐다.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 수괴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추종자들이 아프간에 칩거해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이들을 처벌할 목적으로 아프간에 침공 명령을 내리며 미군이 주둔하게 됐다.

2001년 10월 11일 부시 전 대통령은 아프간 미군 파병을 발표하면서 승리를 굳게 약속했다. 그는 “이 특별한 전투는 알카에다를 법정에 세울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며 “내일이 될 수도 있고, 한 달 후, 1~2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승리에 관한 용어를 정의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알카에다를 파괴하고 테러단체가 아프간을 근거지 삼아 미국에 대한 또 다른 테러 공격을 감행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6개월 만에 알카에다의 지도자들은 아프간에서 죽거나 붙잡혔거나 도망치면서 이 목표는 달성됐다.

2001~2020년 아프간 파병군 사망자 수(미군, 영국군, 나토군).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발발 이후 미군 2400여명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 1100여명이 사망했다. 2009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가 파병한 이후 2010년 사망자는 710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2020년에는 11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전쟁이 시작된 2001년과 수가 같다. (출처: 이라크전과 아프간전 희생자 집계 웹사이트 아이캐주얼티(Icasualties))
2001~2020년 아프간 파병군 사망자 수(미군, 영국군, 나토군).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발발 이후 미군 2400여명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 1100여명이 사망했다. 2009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가 파병한 이후 2010년 사망자는 710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2020년에는 11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전쟁이 시작된 2001년과 수가 같다. (출처: 이라크전과 아프간전 희생자 집계 웹사이트 아이캐주얼티(Icasualties))

그러나 이후 부시는 종전이 아닌 임무 확대를 선택했다. 2002년 4월 그는 새로운 군사·정치적 목표를 발표했다. 아프간에 안정된 민주주의, 강한 국군, 더 나은 의료,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새 공교육 시스템을 갖춘 현대화된 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고상해 보이는 목표였으나 부시는 또 달성을 위한 기준과 미군 주둔 시한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후 버락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아프간에서의 승리를 맹세했지만 무엇을 성취할 것인지가 뚜렷하지 않아 전략이 매번 달라졌다. 이날 워싱턴포스트(WP)는 “(물리칠 적이) 알카에다였나. 탈레반이었나. 아프간의 무수한 다른 무장 파벌들은 어떻게 하나”라며 모호한 승리의 기준을 지적했다.

부시 전 대통령 시절 육군 대장으로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을 두 차례 지낸 댄 맥닐은 “나는 내가 승리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해줄 사람을 구하려고 노력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정부 인터뷰에서 토로하기도 했다.

WP에 따르면 전쟁이 길어지자 미국 관리들은 사석에서 아프간 전쟁의 승리에 대한 심각한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은 2003년 10월 고위 관리들에게 보낸 기밀 메모에 “우리는 테러와의 세계대전에서 이기고 있는가, 지고 있는가”라고 묻기도 했으며 로널드 E. 미국 대사는 2006년 8월 외교 전문을 통해 워싱턴의 관리들에게 “아프간에서 우리가 승리하고 있지는 않다. 승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광범위한 인식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2009년 상황이 악화하자 오바마 전 대통령은 수천명의 병력을 추가 파병하고 수백억 달러를 지출하는 확장 전략을 발표했다. 오바마 행정부 관리들은 한편으로 완전한 군사적 승리는 있을 수 없으며, 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실질적인 방법은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당사자들이 ‘정치적 해결책’에 도달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미 국무부의 바넷 루빈 선임보좌관은 “우리에게 정치적 해결 방안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반란만 계속 일어나고 있다”며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의 두 번째 임기가 끝날 때까지 아프간에서 모든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아프간군이 스스로 탈레반에 대항할 능력이 없다는 게 명백해지자 약속을 뒤집고 8400명의 병력을 남길 것을 명령했다.

2015년 발간된 아프간 정부 내 한 연구는 미군 지도자들이 정부 관계자들에게 “미국은 아프간에 대한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며 전쟁 수행에 있어 역기능의 규모도 알지 못한다”고 한 발언을 공개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7년 6월 짐 매티스 전 국방장관은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우리는 지금 아프간에서 승리하고 있지 않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2개월 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새로운 전쟁 전략을 발표하며 “우리의 승리는 적에 대한 공격, 이슬람국가(IS) 말살, 알카에다 진압,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을 막고 테러 공격을 멈추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트럼프는 미군 병력을 1만 4천명으로 늘리고 전쟁을 재확대했으며 공습작전을 지시했다.

그러나 트럼프도 사실 완전한 군사적 승리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는 단지 평화회담을 위한 영향력을 얻기 위해 탈레반을 약화시키려 했을 뿐이다. 작년 2월, 트럼프 행정부는 탈레반과 협상을 타결해 미군이 차츰 철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미국이 역사상 가장 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모든 약속을 중단시킨 순간이었다.

이제 미국은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간의 평화회담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작년 9월 카타르 도하에서 시작된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의 평화협상은 대부분 교착상태에 빠졌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과정을 다시 한번 시작하기 위해 오는 24일 터키에서 새로운 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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