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게시판 불만 폭주ㆍ접속 지연…지휘부 잇단 비난
(서울=연합뉴스) 정부가 20일 검ㆍ경 수사권 조정안을 극적으로 합의해 발표하자 경찰 내부에서는 "오히려 하지 않는 것이 낫다"며 격앙된 반응이 나왔다.
경찰청의 한 총경급 간부는 "하나마나한 합의다. 잘못하면 검사의 권한을 더 강화할 소지가 있다. 검찰 개혁의 취지와 전혀 맞지 않는 합의안"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합의안은 지난 17일 오후 열린 검-경 간담회에서 총리실 고위 관계자가 들고 나온 조정안과 거의 유사한 것으로 경찰은 이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사법경찰관의 역할을 규정하는 형소법 196조 첫 항에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는 내용이 들어갈 경우 기존 형사소송법과 다를 바가 없고 검사의 지휘권만 더욱 강조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현재 사건의 98%를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하고 있으며 검찰의 수사는 2%밖에 안되는 현실을 고려해도 경찰이 수사의 보조자가 아닌 주체로 인정받는 게 196조 첫 항에 들어가는게 옳다는 것이 경찰의 주장이다.
경찰청의 경정급 간부는 "(이번 합의안은) 기존 196조 1항을 2개로 나눠놓은 것에 불과하다. 이런 식으로 할 것이라면 논의를 할 필요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매우 미흡하고 달라진게 없다"고 분노했다.
이번 수사권 조정 문제에 깊이 관여한 또다른 경정은 "할 말이 없다. 허탈할 뿐"이라며 충격을 받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평소 검ㆍ경 수사권 조정에 관심이 많았다는 서울 시내 경찰서의 간부는 조현오 경찰청장이 왜 이런 조정안에 합의했는지 알 수 없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그는 "정부 합의니, 입법적 결단이니 오랜 수사권 조정 문제가 최종 타결된 것처럼 비쳐지면 경찰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간부는 또 "형소법은 한번 바뀌면 수십년을 가야 하는데 이 합의안대로라면 안 바뀌는게 낫다"며 "검찰 개혁은 곧 다시 불거질 파괴력있는 과제인데 그때 가서 `이미 끝난 얘기 아니냐'는 식으로 넘어갈 수 있다. 경찰은 이번에 개정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날 경찰 내부 게시판에는 불만 글이 폭주해 접속이 지연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게시판에는 `치욕적 합의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절망적이다', `새로운 노예계약이다' 등의 제목의 비난성 글이 연달아 올라와 수백건씩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검찰이 평검사회의를 한 것처럼 집단 행동을 촉구하는 글이 있었으며 `우리는 정녕 검사를 수사할 수 없는가'라는 등 절망섞인 글까지 나왔다.
정부 합의안에 서명한 수뇌부를 성토하는 글도 잇따라 `직(職)을 걸고 배수진을 친 결과가 이 정도인가', `이렇게 되면 사표 내는 건가', `우리 수뇌부는 너무 허리를 잘 숙인다', `정말 용기있는 지휘관은 없나' 등의 글이 하루종일 게시판을 달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