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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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희고 산은 푸르며, 시냇물은 흐르고 바위는 서 있다. 온갖 자연은 이렇듯 스스로 고요한데, 사람의 마음만 공연히 소란스럽구나.” ‘소창청기’라는 옛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자연은 저마다 있을 자리에 있으면서 서로 조화를 이뤄 고요하고 평화로운데 사람들은 마음 편할 날이 없고 몸담고 사는 세상 또한 소란스럽다. 세상이 시끄럽다는 것은 세상 그 자체가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 즉 인간사가 시끄럽다는 뜻 아니겠는가. 성실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도 기회는 공평하지 않고 과정이나 결과 또한 특권과 반칙이 앞서게 되면 평범한 시민이 잘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렇듯 살기 힘들고 미래가 불투명하면 삶이 행복할 수가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자연은 인간세상과는 달리 어김없이 계절을 변화시켜 미세먼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도 봄 기운 완연하다. 봄을 알리는 전령이야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부터 민들레 풀꽃까지 다양하지만 무엇보다도 들에 산에 활짝 피는 봄꽃들 아니겠는가. 오죽했으면 한시 구절에 ‘오랑캐 땅에 꽃이 피지 않아 봄이 와도 봄같지 아니하다(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는 말이 생겼을까.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은 우리 산야에 흔히 볼 수 있는 진달래와 개나리가 있다. 재미있는 건 ‘진’이 붙은 참꽃 진달래와 접두어로 ‘개’가 붙은 개나리에 대한 명칭에서 두 꽃을 대하는 옛사람들의 시각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진달래가 훨씬 더 유익했는가 보다. 요즘에는 진달래나 개나리보다 벚꽃이나 목련이 더 봄꽃을 대표하는 것 같다. 길 가던 행인들도 활짝핀 가로수 꽃길 사이에서 가던 길 멈추고 셔터를 누르기 바쁘다. 어떤 생물학자는 꽃을 식물의 생식기관이라고 정의하지만 그래도 꽃은 우리 마음속에 아름다움을 일으키는 미의 표상임에 틀림없다. 일찍이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측은지심/惻隱之心), 부끄러워하는 마음(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하는 마음(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시비지심/是非之心) 이렇게 ‘사단(四端)’에 맞춰 설명한 바가 있는데 여기에다 ‘추미지심(追美之心)’, 즉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이 하나 더 보태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름다움’이 인간의 본성에서 연원하는가에 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지만 인간의 마음을 진화적으로 탐구하는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의 마음속엔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어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세상에 나온 지 얼마되지 않은 갓난 아기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가 있는데 아이가 비교적 젊고 예쁜 사람에겐 방긋방긋 웃으며 호응이 좋은 반면 늙고 못생긴 사람에겐 인상을 찌푸리거나 우는 등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한다는 재미있는 연구다.

물론 우리가 배워왔듯이 미의 기준은 시대와 지역, 환경에 따라 다를 뿐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해오고 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을 관통하는 미의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뚱뚱함을 미의 기준으로 삼는 사회도 있고, 날씬함을 미의 기준으로 삼는 사회도 있지만 두 사회의 공통적인 보편적 기준은 존재한다.

그렇다면 미의 보편적 기준은 무엇일까? 달리 말해 인간 본성에 내재된 미의 보편적 기준은 무엇일까? ‘균형과 조화’ ‘황금 비율’ ‘대칭’ 이런 것이 미의 보편적 기준으로 적용되지 않을까? 아마도 그것은 그 사회가 요구하는 ‘건강함’과 직결돼 있을 것이다. 진화심리학에서는 건강의 척도로 파악하는 균형과 조화로움, 안정적인 황금 비율 등에 대한 선호가 인간 본성에 깊이 각인돼 진화해온 것으로 파악한다. 건축과 미술 같은 예술 분야뿐 아니라 미인의 기준이나 관상학만 보더라도 결국은 균형과 대칭이 가장 주요한 포인트임을 미루어볼 때 이러한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이러한 비례와 대칭, 황금 분할 그리고 수평과 균형 등의 미는 바로 자연에서 구현하는 아름다움임을 알 수 있다. 산과 들, 강과 바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의 형태와 역동적인 움직임 등의 건강함과 조화로움 그 자체가 아름다움의 표상인 것이다. 꽃을 보더라도 거의가 다 수평과 대칭이 기본이고 거기에 안정과 조화로움이 나타난다. 결국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인간의 본성이고 아름다움의 대상은 바로 자연인 셈이다.

아무튼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마음은 본능적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먹고 살기 바쁘기도 하거니와 실용주의 만능사회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사치로 치부되고 스스로 각박한 삶을 벗어날 여유조차 없다. 그러나 이제 봄도 오고 꽃도 피었다. 각박한 생활이지만 마음속에 내재한 본능을 일깨워 메마른 마음속에 아름다움의 꽃을 길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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