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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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7월 15일에 중추원 의관 안종덕은 탐오와 매관매직을 지적한다. 
“대체로 아래가 위를 따르는 것은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고, 들풀이 바람이 부는 대로 넘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윗사람이 청렴한데 아랫사람이 감히 어떻게 탐오(貪汚)하며, 윗사람이 근면한데 아랫사람이 감히 어떻게 게으르며, 윗사람이 공정한데 아랫사람이 감히 어떻게 사리(私利)를 챙기며, 윗사람이 신의가 있는데 아랫사람이 감히 어떻게 속이는 짓을 하겠습니까? 
지금 폐하는 청렴한 것을 좋아하지만 조정의 신하들은 탐오 행위를 한 오점을 가지고 있고 지방의 백성들은 생계가 거덜 났다는 탄식이 많습니다. 
뇌물이 성행해 관청의 법도가 문란해졌으며, 탐학한 자들이 도처에 넘치고 도적이 빈번히 일어납니다. 이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신은 폐하께서 청렴에 착실하게 마음을 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대체로 청렴이라는 것은 청백하고 검소한 것이니, 깨끗해 외람되거나 흐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중략)
무릇 탁지부의 정공(正供)은 모두 폐하의 소유입니다. 그런데 또 무엇 때문에 별도로 내장원(內藏院)을 설치하고 탁지부에 들어가야 할 일체의 공전(公田), 사전(私田), 개인 토지, 산과 못, 어장과 염전, 인삼포(人蔘圃), 광산 등을 떼어내어 모두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그리하여 탁지부의 경비가 바닥나 녹봉과 급료, 공사비로 줄 비용이 없으면 대뜸 내탕전(內帑錢)이라 하여 바꾸어서 충당하게 하고는 뒤따라 나랏빚 독촉하듯 상환을 요구합니다.
근래에는 언덕과 들판, 산림과 강이나 바다, 제방과 방죽, 어장과 사냥터로서 개간해서 곡식을 심고 확장한 것들을 탁지부에 넘기지 않고 어공원(御供院)이라고 이름 붙이고는 내장원에서 관할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임금에게 올릴 공물(貢物)을 꼭 이런 묵인 땅이나 황무지 같은 몹쓸 데서 나는 물건들로 바쳐야 한단 말입니까? 이것은 백성들에게 청렴치 못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니, 풍속이 어떻게 아름다워지며 백성들이 어떻게 탐욕스러워지지 않겠습니까?.”

안종덕은 내장원의 폐단에 대해 지적한다. 이어서 그는 매관매직의 폐해에 대해 상소한다.  
“대체로 벼슬을 파는 문제로 말하면 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망치는 길입니다. 중국 한나라의 서쪽 후원(後苑)에서 벼슬을 팔고, 진나라의 개인 집에서 벼슬을 팔던 일이 모두 이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그 전철을 몸소 밟으십니까? 
대체로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은 하늘이 준 벼슬이고 임금과 함께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어찌 공공연히 사거나 팔아먹을 물건이겠습니까? 저 간교한 토호들과 아전들이 감히 요행으로 폭리를 얻어 볼 생각을 품고, 부유한 자는 재산을 털고 가난한 자는 이리저리 빚을 내어 먼저 10배 값을 실어다 주고서 밑지는 장사로 수령 자리를 사는데, 그런 사람이 나랏일을 위하겠습니까? 자신을 위하겠습니까? 빚을 갚고 제가 차지할 이득을 장차 어디에서 짜내며, 부임한 날부터 머리를 싸매고 하는 짓이란 어떤 것들이겠습니까? 게다가 사적으로 뇌물을 받아먹는 행위가 계속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본전을 못 찾을 것이니, 이런 형편에서 그가 하는 정사가 과연 청렴한 것이겠습니까, 탐욕스러운 것이겠습니까? (중략) 이로 말미암아 도적들의 약탈로 나라 것이건 개인 것이건 몽땅 거덜 나고 탐오와 횡령 행위가 꼬리를 물어 감옥이 늘 넘쳐나며 창고의 재산이 늘 모자라고 군사를 동원해도 토벌할 수 없으니, 난리가 터질 징조가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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