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의원 원장
최근의 고물가와 서민경기 침체는 우리의 가정생활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수입의 감소, 빚과 이자 부담의 고통, 실직의 두려움 등이 매일 우리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람은 아마 우리 ‘아버지’들일 것이다.

아버지들은 경제적 불안 외에도 위치적 불안과 기능적 불안을 갖고 있다. 위치적 불안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예전에는 가정에서 가장 힘이 세고 높은 사람으로 대접받던 아버지였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건 아버지는 이제 그다지 크고 강한 사람이 아닌 지경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는 집에 돈만 벌어다 주면 되는 사람 또는 자녀의 학원비를 충당해 주는 사람으로 전락했다.

이제 아버지는 자녀의 시험 스케줄에 맞춰서 여가 활동 계획을 잡아야 한다. 또한 집에서 큰 소리를 내면 안 되는 분위기다. 가족 전체의 필요성에 맞추어서 아버지는 나름대로 몸을 낮추지만, 때로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또는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늘 의문이다. 기능적 불안 또한 상당하다. 아버지는 여러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아버지는 집안의 가장이자 아내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른바 ‘슈퍼 대디’를 원하고 있다. 돈을 잘 벌어오는 것은 아버지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기능이고, 자상하고 따뜻한 남편이어야 함은 물론이며 자녀와 잘 놀아주고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곧바로 옆집 아빠 또는 자녀 친구의 아빠와 비교 당한다.

어릴 적에 아버지의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던 아빠로서는 도대체 내 아이와 어떻게 놀아주고 대화해야 할 지 모른다. 모처럼 마음먹고 아이와 놀아주면, “아빠는 재미없어”라는 반응이 되돌아오기 일쑤다. 사춘기 자녀와 대화를 잘 나누어야 한다는 충고를 듣고 그날 저녁 얘기를 걸면, 대답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는 아이 때문에 마음이 상하곤 한다. 그렇다면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파악하고 있고, 아이와 스킨십도 자주 하면서 재미있게 잘 놀뿐더러 아이를 인정해 주고 받아주자. 의사 결정의 과정에서도 아이의 의견이 잘 반영되고 대부분 받아줄 수 있도록 하자. 그러나 항상 수평적인 관계만은 아니다. 분명하게 잘못된 아이의 행동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지적함과 동시에 올바른 대안 방향을 제시해 준다.

이른바 ‘민주적 권위형’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반면에 자녀나 가족을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독재 유형의 아버지, 아이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무관심 유형의 아버지, 아이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 무책임 유형의 아버지, 아이와 대화하거나 놀 줄 모르는 무능력 유형의 아버지, 아이에게 실망감을 안겨다 주는 배신 유형의 아버지는 피해야 할 유형들이다.

자녀 양육과 지도에 적극적인 아버지의 경우 자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 결과로 나와 있다. 특히 자녀의 사회성 향상, 리더십 함양, 논리적인 사고 능력 배양 등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는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더 잘 가르칠 수 있는 덕목들이다.

아버지들이여! 다음의 몇 가지 사항들을 기억하여 오늘부터 실천해 보자. 첫째, 아이에게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는 훈련을 시켜라. “네가 이렇게 행동했을 때 상대방은 기분이 어떨 것 같니?”라는 질문을 던져라. 아이의 사회성은 앞으로 살아나가면서 필요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와 놀아 주거나 대화를 나눈다. 가르치고 혼내는 것보다는 아이와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중에 아빠와 아이의 정(情)은 생겨날 것이다.

셋째, 아이에게 가르친 것이 있다면 반드시 아빠도 그것에 대한 모범을 보여라.

넷째, 가끔씩은 아이에게 따뜻한 말과 감정 표현을 하라.

다섯째, 아이의 반응을 항상 잘 관찰하라. 아이의 반응을 살피면서 훈육의 수위조절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은 비단 우리 가족의 문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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