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예금보다 주식투자
국내외 주식 83조 취득
금융기관 차입 172조원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동학개미 운동’ 등 주식투자 열풍이 불면서 가계가 주식투자를 위해 굴린 돈이 사상 최대 규모를 나타냈다. 그러나 동시에 가계가 금융기관 등에서 빌린 돈도 사상 최대를 기록하면서 주식투자의 상당 부분이 대출을 통한 ‘빚투’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행이 8일 발표한 ‘2020년 자금순환(잠정)’에 따르면 가계(개인사업자 포함) 및 비영리 단체의 순자금 운용액은 192조 1000억원이다. 이는 2019년 (92조 2000억원)의 2.1배 수준이다. 직전 최대 기록인 2015년의 95조원을 뛰어넘었다.
순자금 운용액은 해당 경제주체의 자금운용액에서 자금 조달액을 뺀 값이다. 가계는 이 순자금 운용액이 양(+)인 상태에서 여윳돈을 예금이나 투자의 방식으로 기업이나 정부 등 다른 경제주체에 공급힌다.
순자금 운용 규모가 늘어난 것은 코로나19로 인해 대면서비스를 중심으로 소비가 감소한 가운데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비롯해 정부로부터의 이전소득 등으로 가계 소득이 늘어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지난해 가계는 주식투자 등으로 자금을 굴렸다. 자금운용 부문을 나눠보면 ‘지분증권 및 투자펀드’ 규모가 76조 7000억원으로 전년(-3조 8000억원) 대비 80조 5000억원 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작년 국내외 주식에는 83조 3000억원의 자금을 운용했다.
거주자 발행 주식 및 출자지분(국내주식) 63조 2000억원과 해외주식 20조 1000억원을 취득했다. 이는 국내주식 2018년 21조 8000억원, 해외주식 2019년 2조 1000억원의 기존 기록을 뛰어넘은 것이다.
결제성 예금은 지난해 42조 4000억원 늘면서 역대 최대 규모를 경신했으나, 주식투자 증가 속도에는 미치지 못했다. 가계 전체 금융자산 내 주식·투자펀드의 비중도 2019년 18.1%에서 2020년 21.8%로 늘었다. 주식만 따로 보면 15.3%에서 19.4%로 비중 증가 폭이 더 컸다.
가계의 자금 운용액뿐 아니라 자금 조달액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가계는 173조 5000억원의 자금을 끌어왔다. 이 중 금융기관 차입이 171조 7000억원에 달했다.
비금융 법인기업의 경우 순조달 규모가 88조 3000억원으로 전년(61조 1000억원) 같은 기간보다 크게 확대됐다. 전기 전자 업종 중심으로 영업이익은 개선됐으나 단기 운전자금 및 장기 시설자금 수요가 확대된 데 따른 것이다. 기업은 자금 운용액보다 자금 조달액이 많아 순자금 운용액이 음(-)인 ‘순자금 조달’ 상태가 일반적이다.
재정지출을 늘린 정부의 여윳돈은 축소됐다. 정부의 순자금 운용액은 전년 29조 5000억원에서 지난해 –27조 1000억원으로 순운용에서 순조달 상태로 전환했다. 이는 코로나19로 재난지원금으로 인한 이전 지출이 지난해 1~11월 333조 4000억원으로 집계되며 전년 같은기간(291조 8000억원)에 비해 크게 늘어난 영향을 받았다. 정부가 ‘순조달’을 기록한 것은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9년(15조원 순조달) 이후 처음이다.
국채 발행 등을 통해 정부가 조달한 자금(141조 5000억원)과 운용한 자금(114조 4000억원)도 모두 역대 최대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