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을 중간 경유지로 선택한 흑두루미는 4400여 마리로 집계됐다. 사진은 순천만에 잔류 중인 흑두루미 가족. (제공: 순천시) ⓒ천지일보 2021.4.5
순천만을 중간 경유지로 선택한 흑두루미는 4400여 마리로 집계됐다. 사진은 순천만에 잔류 중인 흑두루미 가족. (제공: 순천시) ⓒ천지일보 2021.4.5

순천만 중간 경유지로 선택
전 세계 개체 수의 40% 이용
모니터링팀 흑두루미 관찰
추수 때 볏짚깔아 먹이 줘
출입 통제 철새들 쉼터 제공

[천지일보 순천=김미정 기자] 2021년 3월 29일 기준 순천만 흑두루미는 33마리만 남고 모두 번식지로 떠났다. 

지난해 10월 23일 순천만에 처음 도래해 총 3107마리의 흑두루미가 순천만에서 겨울을 났다. 전년도보다 15% 증가한 수치다. 월동 개체 외에도 번식지와 월동지를 오가는 동안 순천만을 중간 경유지로 선택한 흑두루미도 4400여 마리가 집계됐다. 월동 개체군과 중간 개체군을 합하면 순천만은 전 세계 생존 개체 수의 40%가 이용하는 중요한 서식지가 됐다. 흑두루미가 순천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흑두루미와 함께 새벽 깨운다

용산전망대는 순천만 일몰을 감상하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S자 물길을 따라 붉게 물들어가는 갯벌은 언제 봐도 탄성이 절로 터진다. 붉은 해가 갯벌 속으로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카메라 셔터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화려한 빛의 향연이 끝나자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텅 빈 용산전망대. 스포트라이트가 꺼진 갯벌에 순천만 진객이 입장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들판 곳곳에 흩어져 있던 흑두루미들이 연안과 내륙의 경계를 넘어 긴 행렬을 지어 갯벌 속으로 들어왔다. 서로 경계음을 내며 위치를 조율하는가 싶더니 검은 옷에 흰 두건을 쓴 수도승처럼 갯벌에 내려앉는 모습이 장엄하기까지 하다. 흑두루미는 갯벌 안으로 들어와 다음날 새벽까지 그대로 섬이 됐다.

새벽 6시!

불빛을 낮춘 차량이 갯벌 쪽으로 다가온다. 순천만 흑두루미 새벽 모니터링팀이다. 이들은 이동 시기인 10월과 이듬해 3월 두 달은 매일, 월동 안정기인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매주 1회씩 흑두루미 잠자리를 모니터링했다. 

새벽 시간은 흑두루미를 방해하지 않고 개체 수를 조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또 탈진하거나 아픈 새를 파악하기도 좋다. 잠자리에서 먹이터까지 흑두루미 비행 거리는 1.5㎞~3㎞. 막 잠에서 깬 흑두루미 가족은 S자 갯골, 원형 갈대 군락을 지나 정갈한 모습으로 육지에 안착했다. 모니터링팀은 흑두루미가 머무는 농경지를 격자 틀 모양으로 나눠 서식지 이용 패턴을 기록했다.

흑두루미의 보금자리인 순천만 전경. (제공: 순천시) ⓒ천지일보 2021.4.5
흑두루미의 보금자리인 순천만 전경. (제공: 순천시) ⓒ천지일보 2021.4.5

◆새들과 인간의 경계 관리하는 농민들

흑두루미는 천연기념물 228호이자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는 적색목록의 취약종으로 분류돼 국제적으로 보호 받고있는 종이다. 전 세계 1만 6000마리~1만 8000마리가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천시는 흑두루미 주요 서식지인 순천만(28㎢)과 그 주변 농경지·강하구 기수역 내륙습지(5.656㎢)는 습지보호지역과 람사르습지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순천만 농민들은 2009년부터 겨울철새를 위해 농경지 안에 있던 전봇대를 제거했다. 영농단을 꾸려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고 매년 들판에 흑두루미가 남긴 메시지를 새겼다. 지난해 메시지는 ‘힘내라 대한민국!’으로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와 희망 메시지였다. 

가을철 추수 시기가 되면 농민들은 볏짚을 깔고 볍씨를 새들에게 먹이를 내어 줬다. 주요 서식지는 갈대 울타리를 설치해 사람과 차량의 출입을 통제하고 쉼터를 제공해 줬다. 풍부한 먹이는 새들의 면역력을 높였다. 먹이를 찾아 인가나 농장 가까이 갈 필요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새들과 인간의 거리 두기가 된 것이다. 작년 겨울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전국적으로 확산할 때 순천의 출입관리지역 설정, 농경지 내 가금농장 철거, 야생조류 분변 자체 검사, 탐방객을 위한 삼중 소독 관리 시스템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가능하게 한 정책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흑두루미가 떠난 들판은 다시 농민들 차지가 된다. 농민들은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으며 다시 흑두루미를 기다릴 것이다. 올해 흑두루미는 주민들에게 어떤 메세지를 남기고 떠났을까? 올해 순천만 경관농업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흑두루미 하늘길 연결하는 국제 연대

천연기념물 228호 흑두루미는 순천시 시조다. 매년 2월 28일은 순천만 흑두루미의 날이다. 

올해는 순천만 흑두루미의 날을 기념해 2월 26일부터 3월 1일까지 4일간 심포지엄, 음악회, 릴레이 탐조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전 세계 람사르 습지도시 초대 의장을 맡은 순천시 허석 시장은 심포지엄 개회사에서 “우리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자연과 윤리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면서 “천상의 하모니를 들려 주고 있는 흑두루미 노래가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서식지 간 국가 연대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두루미재단 스파이크 밀링턴 부회장은 심포지엄 기조 강연에서 “흑두루미처럼 이동성 철새를 보호하기 위해 흑두루미와 지역주민의 관계 맺기, 번식지-월동지-중간기착지로 이어지는 국가 간 연대가 중요하다”면서 “글로벌 흑두루미 사진 공모전, 화보집 제작 등 순천의 루미 하늘길 연결 프로젝트는 지역과 지역, 국가와 국가를 연결하는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한국물새네트워크 이기섭 박사는 심포지엄에서 “순천시의 흑두루미 서식지 보전 노력은 한반도 흑두루미 개체 수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면서 “흑두루미 중간기착지로 알려진 북한의 제1호 람사르 습지인 문덕 철새보호구의 가치를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순천 사람들은 3월이면 흑두루미 북상이 시작되면 창을 열고 두루미 하늘길을 살핀다. 운이 좋으면 편대를 지어 북상하는 흑두루미 가족을 만나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순천에서 출발한 흑두루미 가족은 지금쯤 어느 하늘을 비행하고 있을까? 순천만과 비슷한 풍경의 평남 청천강 하구 문덕 철새보호구에서 지친 날개를 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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