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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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매년 4월 5일은 식목일이다. 지금은 다소 퇴색됐지만 나무를 심는 날인 이날은 한때 공휴일로 지정됐을 만큼 중요하게 여겨진 날이었다. 한때는 이날이 되면 전 국민이 산에 나무심기 행사를 할 만큼 나라가 떠들썩하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식목일날 산에 심는 나무보다 나무 심으러 간 사람들이 낸 산불로 소실된 나무가 더 많다는 비아냥 소리도 나왔을까. 아무튼 지금은 산에 나무가 울창한 편이라 굳이 나무 심는 날을 지정해 산에 나무심기를 할 필요야 없게 됐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나무심기가 아예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산은 제법 푸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심은 여전히 회색의 콘크리트 빌딩 천지이고 나무와 숲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산림청이 최근 발표한 ‘전국 도시림 현황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생활권 도시숲 면적은 10.07㎡(3평)라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권장 최소기준인 9㎡를 살짝 웃돌긴 해도 런던(27㎡) 뉴욕(23㎡) 파리(13㎡) 등의 세계적 수준보다는 여전히 미흡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주요도시인 서울의 1인당 생활권 도시숲 면적 4.35㎡, 부산의 1인당 도시공원 면적 6.6㎡는 다른 세계 주요 도시인 파리(13㎡), 뉴욕(23㎡), 런던(27㎡)과 비교해보면 그 면적이 ‘절반’에도 못 미침을 알 수 있다. 즉 우리나라의 전체 인구 중 약 90%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지만 생활권 주변에서 누릴 수 있는 도시숲은 여전히 크게 부족하다는 말이다.

시민의 삶과 도시의 품격을 결정하는 척도는 높은 빌딩, 넓은 도로 화려한 도시 미관이 아니라 얼마만큼 걷기 편하고 쉬기 좋은 도시인가, 또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숲이 있는가, 숲과 가로수로 상징되는 도심의 숲이 얼마나 멋진가에 달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인 관광지로 유명한 해외 주요도시들의 특징이 바로 도심 한복판을 걸어서 다닐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훌륭한 도시숲과 공원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뉴욕이나 보스턴, 런던이나 파리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 유명도시들은 도심 안에서 보행과 휴식, 문화와 힐링이 모두 가능하게 조성돼 있다.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온전히 자신의 삶과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시를 설계하고, 자연과 호흡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나무를 심고 도시숲과 공원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생태도시로 유명한 꾸리찌바 역시 일찌감치 건물을 지을 때 나무를 심고 도시숲을 조성해 세계에서 오슬로 다음으로 나무와 숲 비율이 높은 도시로 거듭났다.

이러한 도시계획은 속도와 개발 위주가 아닌 환경과 보행중심으로 도시를 재편해 ‘탄소 제로’를 실현함과 동시에 쾌적한 시민의 삶을 구현하겠다는 구상이 담겨 있다. 실제 숲이 가로 세로 100m, 그러니까 만 제곱미터 정도 너비일 때, 여기서 미세먼지 168kg이 걸러진다고 한다. 나무가 그야말로 공기청정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숲의 미세먼지 농도는 도심보다 25%나 떨어지고, 특히 건강에 치명적인 초미세먼지는 40%나 낮다고 한다. 그래서 도시숲은 도시의 허파이고 생명숲이다. 도시의 숲은 살기 좋은 도시의 요건일뿐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숨 쉬기조차 버거운 ‘호흡 재난’ 시대에서 자연정화 장치이자 생태계 보루가 바로 도시숲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여야 후보가 모두 부산 원도심에 ‘40리 경부선 숲길 조성’을 하겠다는 공약은 매우 반길만한 구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구포에서 사상을 거쳐 부산진역까지 지난 120년 동안 부산의 허리를 끊어놓고 있는 경부선 철길을 걷어내고, 철길은 지하화하고 그곳에 숲길을 만들겠다는 구상은 보행과 도시 숲이라는 미래지향적 도시 건설에 반드시 필요한 계획이다. 사실 옛 철길을 숲길로 조성하는 구상은 이미 서울 경의선 숲길 조성의 사례가 있기도 하다. 경부선 철로를 땅 밑으로 숨기고 구포~부산진역 구간에 푸른 숲 보행로를 조성하는 것은 탄소저감에도 매우 효과적이고 부산의 원도심을 푸른 도시로 리모델링하는 데도 크게 기여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경부선 철길을 지하화하는 과정은 건설의 몫이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경제적 부수 효과 또한 보너스로 주어질 것이다.

파리도 그렇고 꾸리찌바도 그렇고 세계적인 생태도시 이면에는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다. 담대한 기획과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지닌 지도자의 용기와 리더십이 도시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오는 4월에는 서울과 부산에도 새로운 시장을 선출하게 된다. 차제에 우리나라도 세계 어느 유명도시에 뒤지지 않을 걷기 좋은 도시, 숲의 도시를 설계하고 실행할 시장이 선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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