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김대규(1942~2018)

그는 주로

죽음에 관한 시를 썼다.

이젠 우리가 그의 삶을 이야기할 차례다.

 

그는 시를 퇴고하지 않았다.

삶도 퇴고하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들도

그의 죽음을 퇴고하지 말자

 

 

[시평]

김대규는 안양에서 태어나 안양에서 평생을 살다가 안양에서 별세한 시인이다. 지금은 안양이라는 도시가 서울 인근 도시로 서울이나 다름없는, 아주 가까운 곳이다. 그러나 1960년대 70년대만 해도 안양은 지방의 군소 도시, 안양을 가려면 시외버스를 타야만 하는 곳이었다. 지금과 같이 평촌 신도시도 없던, 포도농사가 그래도 이름 있던 작은 지방 도시였다.

그러니 안양에서 태어나 안양에서 살면서 안양에서 시를 쓰는 김대규 시인은 어느 군소 도시에 사는 지방시인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시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젊은 시절 기억하는 김대규라는 시인은 달랐다. 그는 결코 안양을 떠나지 않을뿐더러, 문화의 중심지인 서울을 기웃거리지도 않고, 흙의 시인을 자처하며 시를 쓰고자 마음을 먹은 시인으로, 신선하게 그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김대규 시인이 ‘시인 열전’이라는 시집을 내면서 많은 시인들을 시로 썼다. 위의 시는 김대규 시인과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조병화 선생에 관해서 쓴 시이다. 조병화 선생은 안성 출신이니, 안양과 다소 거리는 있어도 같은 경기도 출신이라는 면에서 심정적으로 가까웠다. 특히 김대규 시인은 조병화 선생의 시와 삶을 좋아해, 연세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편지를 서로 주고받는 그런 사이가 됐다. 그러면서 인생의 스승, 시의 스승으로 깊은 인연을 맺었다.

일필휘지로 시를 쓰고는, 그리고는 결코 시를 퇴고하지 않는 시인 조병화, 그런 시적 모습을 김대규 시인은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삶도 퇴고하지 않는 조병화 선생의 한 인간으로서의 매력, 그러한 모습을 김대규 시인은 흠모한 듯하다. 한 시대를 살면서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또한 한 시대를 살면서 자신의 고향을 고집하고 자신의 삶을 고집하는 것 또한 아름답다. 안양이라는 지금은 비록 지척의 거리이지만, 어느 작은 소읍, 흙의 문학을 고집하는 그가 있었으므로, 우리의 젊은 시절은 아름다웠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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