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노나라 정공 14년(기원전 496) 공자의 나이 56세로 계속해서 대사구 벼슬에 있었는데 다시 승진하여 재상의 직무를 대리하게 되었다. 공자가 흡족하여 기쁜 표정을 짓자 제자 중 한 사람이 그것을 보고 불만스럽게 말했다. “무릇 군자란 희로애락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는데 하물며 선생님 같은 분께서 어찌 그러시는지요.” “나라의 윗자리에 앉으면 수완을 마음껏 발휘하고 아랫사람의 의견에도 충분히 귀를 기울이는 것은 나쁘진 않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나라의 정치를 혼란시킨 대부 소정묘를 처벌하고 적극적인 정치 개혁을 단행했다. 그 결과 3개월이 지나자 장사꾼은 폭리를 탐하지 않게 되고 문란한 풍기도 사라졌다.

나라의 치안은 확보되고 잃어버린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조차 없어지게 되었다. 또 노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은 일일이 관리에게 말하지 않아도 물자를 마음대로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제나라는 노나라가 융성하게 되자 자못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공자가 이대로 노나라 정치를 계속 이끌어 나간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천하의 패자가 될 것이며 이웃인 제나라는 당장 침략을 받게 될 것이므로 아예 땅을 노나라에 나누어 주는 것이 좋겠다고 대신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대부 여서가 이번에도 나섰다. 그 전에 노나라에 교란 작전을 시도해 본 뒤 땅을 나누어 주어도 늦지 않다고 건의를 올렸다. 제나라에서는 특출한 미녀 80명을 뽑아 노래와 춤을 가르쳐서 아름답게 장식한 마차 30대에 나누어 태워 노나라 정공에게 선물로 보냈다. 제나라의 미녀들은 노나라에 도착하여 남문에서 정공의 하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녀들의 소문을 들은 계환자가 남몰래 매일 구경을 하러 갔다. 미녀들에게 흠뻑 빠진 계환자는 민정 시찰이라며 정공을 남문으로 데리고 갔다. 두 사람은 하루 종일 미녀들의 노래와 춤에 빠져 나랏일은 아랑곳없었다. 

자로가 공자에게 말했다. “나라가 이런 형편인데 선생님은 벼슬을 그만 두셔야 합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얼마 있으면 교제(천지를 모시는 제사가 끝나면 임금은 신하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준다)날이 온다. 그날 만일 예식에 따라 대부에게 제사에 쓰는 고기가 보내진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 괜히 급히 행동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계환자는 이미 제나라로부터 많은 재물을 받아서 그것에 정신이 팔려 사흘 동안이나 나라 일을 보지 않았다. 임금은 교제 날이 되어도 신하들에게 고기를 내리지 않았다. 공자는 마침내 결심을 하고 노나라를 떠났다.

그날 길 떠난 공자는 노나라 남쪽 국경 마을 둔이라는 곳에 머물렀다. 그곳으로 ‘기’라고 하는 악사가 공자의 뒤를 쫓아왔다. “선생님께서는 죄를 지은 일도 없는데 왜 노나라를 떠나십니까?” “노래로 대답하겠소.” 공자가 노래를 불렀다. 여자를 이용한 계략인데 여기에 넘어가면 한 몸의 파멸뿐 나라의 기둥이 저 꼴이라면 멀리 달아나서 유유히 지내고 싶다.

악사 기가 서울로 돌아오자 계환자가 물었다. “공자가 뭐라고 하든가?” 기는 사실대로 말했다. 계환자는 깊이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선생은 내가 여자들을 받아들인 것에 화를 내신 것이 틀림없다.”
공자는 위나라로 가서 자로의 손 위 처남인 안탁주의 집에 머물렀다. 이때 위나라 영공으로부터 등용하고 싶다는 전갈이 왔다.

궁으로 들어간 공자에게 영공이 물었다. “노나라에서는 어느 정도 녹을 받으셨소?” “6만 두입니다.” 공자는 위나라에서도 6만 두의 녹을 받게 되었다. 얼마 뒤 영공에게 공자가 위험인물이라고 헐뜯는 자가 있자 그는 공손여가를 시켜 공자를 줄곧 감시시켰다. 공자는 위험을 느끼자 10개월 만에 결국 위나라를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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