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산어보' 포스터(제공: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 포스터(제공: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신분·나이를 뛰어넘은 약전·창대

이준익 감독의 두 번째 흑백영화

아름다운 자연, 연기 모두 돋보여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내가 아는 지식과 너의 물고기 지식을 바꾸자.”

조선시대를 관통한 성리학을 오롯이 깨달은 학자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아가는 한 청년이 있다. 이들은 신분도, 나이도 다르지만 벗이었고 서로에게 스승이었다. 바로 정약전과 창대의 이야기다.

31일 개봉한 영화 ‘자산어보’는 최초의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지은 정약전과 이를 도운 창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약전은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정조가 가장 신임했던 신하 정약용의 둘째 형이자 스승이었던 인물이다. 창대는 정약전의 ‘자산어보’ 서문과 본문 중간에 나오는 인물로 자세한 내용은 언급돼 있지 않다. 영화 속 창대는 이준익 감독이 상상으로 꾸며낸 인물이다.

때는 정조 승하 후 순조 1년. 정조가 아꼈던 정약용의 형제들을 눈엣가시로 여겼던 세도가들은 ‘서학’을 들어 신유박해를 일으켰고 3형제는 생이별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야 한다”는 정조의 말에 큰 형 정약전은 정약용을 지키기 위해 천주교를 배교했으며 정약용은 학문으로만 받아들였다고 주장해 유배가 됐다. 하지만 둘째였던 정약종은 끝까지 신앙을 지켰고 순교하면서 3형제는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영화 '자산어보' 스틸컷(제공: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 스틸컷(제공: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신유박해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정약전은 흑산도, 정약용은 강진에 유배됐다. 호기심이 많았던 정약전에게 흑산도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책으로는 만나지 못했던 바다의 삶. 뭍과 먼 이 섬에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고 바다는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하지만 바다에서 나는 것들을 사람마다 다르게 말했기에 정리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정약전은 최초의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뭍에서 온 정약전 혼자 그 많은 바다의 이야기를 담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물고기에 대해 잘 아는 ‘창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창대는 ‘상놈’과도 같았지만 양반의 피를 이어받았고 글에 목마른 자였다. 혼자 글공부에 매진했지만 깨닫기란 쉽지 않았고 다만 어지러운 세상에 대해 정학인 성리학이 바로서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창대에게 사학죄인으로 유배를 온 정약전은 결코 좋게 볼 인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창대는 도와달라는 정약전의 말을 쉽게 응하지 않았다. 창대를 바라보던 정약전은 창대가 글에 목마르다는 것을 알고 서로의 지식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둘은 함께 바다를 탐구하며 벗이 됐고 서로의 스승이 됐다.

영화 '자산어보' 스틸컷(제공: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 스틸컷(제공: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끝을 알 수 없는 유배생활 속에서 정약전에게 힘이 됐던 것은 창대도 있지만 ‘가거댁’도 함께였다. 가거도에서 시집을 와서 ‘가거댁’이라고 불리는 이 여인은 죄인인 정약전에게 자신의 집을 내어주고 넉넉한 인심을 베푼다.

영화는 흑백으로 연출됐다. 사극의 대가 이준익 감독이 ‘동주’ 이후 두 번째로 흑백 영화로 만들었다. 이 감독은 “조선시대를 흑백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아서 고집했다”며 흑백영화로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자산어보’는 흑백영화로 제작됐지만 동주와는 또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 동주의 흑백은 나라를 뺏긴 아픔이 담겨 있었다면 ‘자산어보’는 다른 칼라 영화보다 더 자연의 색을 더 품고 있다. 흑백으로 표현했지만 흑산도의 자연을 가득히 담고 있는 느낌이다.

뿐만 아니라 흑백을 뚫고 나오는 배우들의 연기도 조화롭다. 가거댁을 연기한 이정은이 “단조로운 색감 때문에 과하게 연기하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조율하는데 신경썼다”고 말한 것처럼 어느 누구 하나 튀는 인물이 없다. 사극을 처음 찍는다는 정약전 역의 설경구, 고달픈 삶을 연기해야 했던 창대 역의 변요한, 신스틸러로 등장한 이정은까지 모두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영화는 역사를 담고 있지만 어렵지 않게 그 속을 살아간 인물을 재조명한다. 그 유명한 정약용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정약전을 쉽게 표현했고 실존한 인물이지만 상상력으로 덧입혀진 창대를 통해 조선을 살아갔던 민초들의 삶을 풀어냈다.

그렇다고 영화는 조선의 삶만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역사를 통해 오늘날 우리는 되돌아보는 것처럼 ‘자산어보’ 역시 조선을 배경으로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방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 속 정약전이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 삶에서 나를 깊어지게 하는 벗은 누구인지 영화를 보면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영화 '자산어보' 스틸컷(제공: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 스틸컷(제공: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