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이른바 ‘반값 등록금’ 시비가 일으켜 놓은 사회적 파장이 심각하다. 아카데미를 뛰쳐나온 대학생들의 가투(街鬪)가 뜨겁다. 학부모들까지 점차 이에 가세할 태세다. 뭔가 청년 지성들을 설득시킬 만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그들을 다시 학원으로 되돌려 보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드디어 올 것이 왔기 때문이다. 어찌해야 하는가.

일부 국회의원들의 가투 동참은 직무유기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록(國祿)을 먹는 이상 그들은 아무리 야당의원일지라도 적어도 국정의 절반은 책임을 져야 맞다. 여당의 의정 파트너로서 국회에서 비둘기처럼 머리를 맞대든지 사리를 놓고 용호상박의 싸움을 하든지 해야지 자연인처럼 가투에 나서는 것은 도대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청년들의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Populism)적 인기 영합 행위이지만 그들에게 박수만을 보낼 국민은 없다. 그럴 정열과 시간이 있으면 국회에서 들끓는 의제를 수렴해 논의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헌법기관으로서의 책무다. 제발 가투에 나서는 것이 낯 뜨거운 줄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자식을 대학에 보낸 학부모치고 등록금이 싸다고 할 사람은 대한민국에는 없다. 흔히 쓰는 말로 학부모는 허리가 휘고 뼈가 빠진다. 그렇게 비싼 등록금은 세계 상위권이다. 그럼에도 교육의 질은 하위권을 맴돈다. 더구나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난에 허덕이므로 제대로 보상받는 것도 아니다. 교육을 시장 논리대로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투입에 비해 산출이 너무 보잘 것이 없으니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쌓인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등록금 시비는 대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그 뒤를 돌보는 학부모들의 민생문제이면서 한국 교육 현실과 수준에 대한 문제 제기다.

‘반값 등록금’ 시비는 이렇게나 복잡한 인과율(因果律)을 갖고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그만큼 문제가 위험천만한 폭발성을 안고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국회는 여야 가릴 것 없이 얄팍한 정략이나 선동적인 인기 영합 자세를 버리고 대국적인 관점에서 심도 있게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정부는 마땅히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진정성을 가지고 가장 성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언제 터질지 시기가 문제였지 어차피 올 것이 왔으므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본질적이고 종합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어물쩍 넘어가기는 벌써 틀린 일이 되고 말았다. 본질적으로 포괄적인 민생대책이 있어야 한다.

대학 등록금은 대부분 학부모들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 더구나 대학 등록금이 교육의 질이나 졸업 후의 보상적 측면에서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것에 이의가 없다. 그렇다면 더 말할 것 없이 반값은 몰라도 가능한 만큼 최대한 내리는 것이 맞다. 물이 마른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듯 대학들은 피폐한 민생에 허덕이는 학부모들의 처지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매년 올리고 또 올리는 등록금 인상 행렬을 이어갔다. 정부는 학비 부담에 소리 없이 비명을 삼키는 학부모들의 고통을 헤아리지 않고 이를 무심히 용인해왔다. 그 결과가 오늘의 가투와 소요로 발전한 것이다. 꼭 이렇게 거리로 뛰쳐나와 길을 막고 실력행사를 해야 움직이는 우리의 국가 시스템이 참으로 안타깝다.

‘반값 등록금’ 얘기는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먼저 꺼낸 얘기가 아니다. 무책임한 정치인들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등록금 부담에 울고 싶은데 정치인들이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뺨을 제때에 때려준 셈이다. 그렇다면 등록금을 내리라는 요구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여지가 추호도 없다. 책임도 못질 얘기를 꺼낸 우리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적 발상과 발언이 한심할 뿐이다. 말을 꺼낸 이상 그들은 무슨 수를 쓰던 책임을 져야 한다. 신뢰가 무너지면 정치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일이 터진 뒤에서야 허둥대는 정부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일을 가래를 들고도 쩔쩔매는 꼴이다.

국민들이 각종 복지 및 분배 욕구가 분출하는 것은 일종의 피로감의 표현이다. 성장 신화에 젖어 불만을 다독이고 살아왔지만 되돌아 온 것은 빈부의 양극화와 경제사회적 소외다. 이에 국민들은 지쳐 있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그것은 성장 신화에 저당 잡힌 ‘내 몫 찾기’의 외침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에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이 불을 지른다. 성장과 분배의 조화는 당연한 것이지만 포퓰리즘으로 급격히 쌓아놓은 자산을 나누어 먹자는 쪽으로만 기울면 그 다음은 성장도 분배도 없을 것이다. 무상 급식, 무상 교육, 무상 의료, 반값 아파트, 드디어는 반값 등록금을 말하기에 이르렀다. 무상이고 반값이고 수익자도 국민이지만 그 부담도 결국은 국민이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국민의 욕구를 쫓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정치이며 정부지만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지 이러다간 필시 감당 못할 국가적 국민적 혼란과 ‘재앙’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사태가 오면 민주주의에도 위기가 온다는 것을 정치인들은 모르는가.

자유 민주주의는 소중한 가치다. 하지만 이렇게 포퓰리즘이 횡행할 수 있다는 것이 자유선거가 있는 민주주의의 함정이며 덫이다. 우리는 이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국운 상승의 꼭짓점을 찍었는가. 참으로 작금의 상황이 걱정스럽다.

포퓰리즘의 바람 그것은 분명 잦아들어야 하며 국민은 그것이 제공하는 달콤한 유혹을 단호히 물리쳐야 한다. 그것이 내가 살고 나라가 사는 길이다. 발등의 불로 등장한 ‘반값 등록금’ 시비는 그 해결이 중요할 뿐 아니라 무책임한 포퓰리즘을 추방하는 계기로 삼는 것 역시 그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국민은 달콤한 포퓰리즘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쳐야 하며 포퓰리즘에 매달리는 정치인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마당이니 더 더욱 그러하다. 별의 별 난관을 다 극복해온 우리 국민이기에 최후의 보루는 역시 우리 국민일 것으로 믿을 밖에 다른 도리는 없을 것 같다. 국민이 나서 포퓰리즘과 그것이 만들어낼 국가적 재앙과의 나쁜 인과율을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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