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재건마을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해 인근 판자촌 일대가 잿더미로 변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30년 터전 잃은 주민들 철거 당할까봐 마을 떠나지 못해

[천지일보=장요한 기자] “아이고… 하루아침에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도 없을 거야.”
13일 오후 1시 30분경 김순자(가명, 68) 할머니가 화재로 집이 다 타고 재만 남은 터에서 긴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는 지난밤 불이 집을 다 삼켜버린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한숨도 못 잤다. 김 할머니는 아직 그을음 냄새가 나는 잿더미 속에서 건질만한 물건은 없는지 살펴보면서 자꾸만 눈에 맺히는 이슬을 손으로 훔쳤다.

12일 오후 4시 30분경 서울 강남구 개포4동 1244번지(포이동 266번지) 판자촌인 ‘포이동 266번지 재건마을’. 인근 구룡마을과 함께 강남에 남은 마지막 판자촌인 이곳 내 재활용센터 쓰레기더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곧 슬레이트 지붕과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집들을 태워 판자촌 96가구 중 74가구가 순식간에 전소됐다. 이날 강남소방서 대원을 비롯해 소방대원 170여 명과 경찰관 20여 명, 소방차와 소방헬기, 구급차 등 75대 장비가 동원돼 진화작업을 벌여 큰 불길은 화재가 난 지 1시간여 만에 잡혔다. 하지만 잔불 때문에 밤늦게까지 진화작업은 계속됐다.

소방서 추산에 따르면 3300㎡ 중 990㎡를 태우고 1억 1000만 원의 재산피해를 냈으나,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재건마을은 빽빽이 판잣집 96채가 연결돼 있고 마주 보는 집 사이로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아 화재에 취약한 곳이다. 때문에 평소 마을주민들은 불조심에 각별히 신경 써왔던 터였다.

주민들은 구에 마을 복구와 재정착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포이동 266번지 사수대책위원회 조철순 위원장은 “주민들이 다시 마을에 정착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이는 마을을 절대 떠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

22년째 거주하고 있는 서미자(54) 씨도 “아무도 믿을 수 없다”며 “다른 것 없다. 이곳에서 다시 살 수 있도록 주거권만 인정해달라”고 말했다.

현재 수서경찰서는 사건 당시 나무젓가락에 라이터로 불을 붙여 스티로폼에 올려놓아 불을 낸 혐의로 김모(9) 군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김 군이 미성년자인 점을 고려해 훈방할 계획이다.

12일 밤에는 30여 명의 대학생도 주민들과 함께 했다. 이들은 (사)평화캠프인연맺기운동본부 소속 회원들로, 2004년부터 이곳 15명의 학생을 위해 주3회 공부방을 운영해오고 있다. 평화캠프 문미정 본부장은 “아이들이 엄청 놀란 상태였다”며 “교사들을 보자마자 아이들이 달려와 ‘저희 집이 없어졌어요’라고 말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문 본부장은 “화재가 날 수밖에 없는 불안 불안한 이 환경여건이 하루빨리 개선됐으면 한다”는 바람도 전했다.

마을 주민 270여 명 대부분은 3층 컨테이너박스로 만든 마을회관과 회관 앞에 임시로 설치한 천막, 그리고 타지 않은 20여 판잣집에 흩어져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강남구가 주민들에게 인근 구룡초등학교 체육관으로 거처를 잠시 옮기라고 요청했지만 주민들은 이를 거절했다. 마을을 비우면 구에서 철거반을 투입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때문이었다.

주민들이 이토록 불신을 갖게 된 것은 이 판자촌이 형성된 1980년대부터다. 판자촌은 1981년 박정희 정권 당시 넝마주의, 전쟁고아 등의 도시 빈민을 ‘자활근로대’라는 이름으로 강제 이주시켜 형성된 빈민촌이다.

이후 1988년 행정구역이 개포동 1266번지로 변경되면서 이곳은 불법점유지로 분류됐고 거주자들의 주민등록증도 말소됐다. 법적으로 공유지 불법점유자가 된 주민들에게는 지금까지 적게는 몇 100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까지 토지변상금이 부과됐다.

이에 주민들은 강남구에 주민번호 복원·등재와 토지변상금 부과 철회를 요구해왔다. 그 결과 지난 2009년 6월에는 대법원이 주민등록을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려 주민들이 21년 만에 존재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토지변상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 재산을 압류당하거나 신용불량자 처지가 됐다.

후원 문의) 02-574-7185, 포이동주거복구후원모금 조철순 국민은행 767401-01-276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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