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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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2일은 ‘물의 날’이었다. ‘세계 물의 날’은 인구 증가와 산업화 등으로 수질이 오염되고 전 세계적으로 먹는 물이 부족해지자, 유엔(UN)이 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1992년부터 매년 3월 22일을 지정해 기념하는 날이다. 올해 유엔에서 정한 29번째 ‘세계 물의 날’ 주제는 ‘물의 가치화(Valuing water)’다. 이에 우리 정부도 2021년 세계 물의 날 주제를 ‘물의 가치, 미래의 가치’로 정했다. 인간과 자연에게 물이 주는 다양한 가치를 이해하고, 미래세대를 위해 잘 보전하자는 취지를 강조하는 의미다.

사실 물의 가치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물은 생명의 근원인 동시에 생명 그 자체이다. 아주 먼 옛날, 지구에 처음으로 생명체가 태어난 곳은 원시 바다, 즉 물이었다. 그후 땅과 하늘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살지만 물 없이 살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 모든 생명체는 몸속에 일정한 양의 물을 유지해야 한다. 사람은 약 70%, 어류는 약 80%, 그 밖에 물속의 미생물은 약 95%가 물로 구성돼 있다. 물이 인간 체중의 70%라는 사실은 신비스럽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 탈레스(Thales)는 일찍이 ‘물은 만물의 근원’이라 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역시 만물의 근원은 땅·공기·불과 더불어 물이라고 하는 사원소설을 주장한 바 있다.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상의 물은 지표 면적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바다와 3분의 1을 차지하는 육지의 물로 구분된다. 지표면의 물은 증발돼 대기권으로 올라가 응결된 후 다시 낙하한다. 지표에 낙하한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하천이 되며, 일부는 땅속으로 삼투해 지하수가 된다. 하천수는 호수를 이루기도 하지만 결국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지하수는 지하를 흐르다 지표로 노출된 샘을 통해 하천수와 합쳐진다. 또 하천수나 호수, 해수들의 표면에서는 증발이 일어나고 증발된 수증기는 대기권으로 되돌아간다. 이렇듯 물은 증발·강수·유수·삼투로써 한없는 순환을 되풀이하며 생명의 젖줄과 요람이 되고 있다.

인류의 문명을 살펴봐도 물은 불가분의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문명의 발상지가 물가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으며, 도시의 멸망도 물 부족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물은 고대에서부터 인류에게는 숭배와 신앙의 대상이 됐다. 물에는 성스러운 힘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거기에서 신앙이 탄생했다. 물의 종교적인 정화력은 기독교의 세례나 영세, 불교의 관정 등으로 나타났으며 물이 지닌 청정력과 생명력이 통합적으로 믿음의 대상이 됐다. 인도 힌두교에서는 하천이 풍요와 불정의 원천으로서 신성시되고, 특히 갠지스강의 물은 모든 사자의 혼을 승천시키는 정화력이 있다고 믿었다. 우리나라 민간신앙에서도 물은 생명력이나 풍요의 상징으로 용신 또는 용왕으로 표상됐고 용신·용왕은 용으로 관념화된 수신(水神)이었다.

물은 노장사상에서도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제일의 덕목으로 여겨졌다. 만물을 이롭게 하며 순리에 따르는 물의 성질과 원리를 따져 최고의 선(善)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한 것이다. ‘도덕경(道德經)’ 제8장에는 물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 뛰어나지만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이를 “최고의 선 즉 상선은 자연이고 도(道)이다. 그러나 자연과 도는 보이지 않는다. 무(無)인 것이다. 굳이 ‘물’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도무수요(道無水有), 도는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 중에서 도와 가장 비슷한 것이 바로 물이기 때문”이라고 신영복 선생은 해석했다.

이렇듯 물은 본연의 성질대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면서 막히면 돌아가고 기꺼이 낮은 곳에 머문다.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글게 담기고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네모난 모양으로 담기며 늘 변화에 능동적인 유연성과 모든 생명을 유익하게 해주면서 그 자신은 어떤 상대와도 이익을 위해 다툼이 없는 존재다. 무위(無爲) 속에 자연과 하나 되고 자연과 같이 살아가는 것을 중시하는 삶에서 가장 이상적인 선의 표본이 바로 물임을 알 수 있다.

물의 날을 기억하며 물의 가치, 즉 물처럼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 도와주는 것에 아낌이 없으면서 자기를 주장하는 데 급급하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삶의 자세를 배워봄이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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