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곳간] 딩동, ‘복(福)’이 배달왔습니다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1.3.24
[문화곳간] 딩동, ‘복(福)’이 배달왔습니다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1.3.24

최초 배달 음식은 냉면·해장국

귀로 듣는 또 다른 양식 ‘구전’

‘장수·생명’ 담아 후대에 전해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배달 문화’가 이토록 발달한 적이 있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후 비대면 전환이 확대되면서 온라인과 앱(app,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편히 주문하게 됐다. 음식은 물론, 각종 생필품 등 배달 가능한 것은 점점 더 늘어났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배달 문화를 보고 해외에서는 극찬할 정도다. 그런데 배달 문화는 오늘날 시작된 게 아니라 역사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한민족을 ‘배달의 민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은 무엇을 배달시켰던 걸까.

◆문헌 속 배달 음식 기록

최초의 배달 음식은 조선시대 문헌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황윤석은 1768년 7월 7일 자신의 일기 ‘이재난고’에 “과거시험을 본 다음 날 점심에 일행과 함께 평양냉면을 시켜먹었다”고 기록했다. 또 조선말기 문신 이유원이 쓴 ‘임하필기’에 보면 11살에 임금 자리에 오른 순조(1800~1834년)가 즉위 초 군직과 선전관을 불러 달구경을 하던 중 “냉면을 사 오라고 시켰다”고 적혀 있다. 이 문헌을 살펴보면 배달 문화는 최소 250년이 넘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또 조선시대 양반들은 해장국인 ‘효종갱(曉鐘羹)’을 시켜먹었다. 효종갱은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이라는 뜻으로 1800년대에 등장했다. 조선 말기 문신 최영년의 ‘해동죽지(1925년)’를 살펴보면 “밤에 항아리를 솜에 싸서 서울로 보내면 국 항아리가 그때까지 따뜻해서 해장에 더없이 좋다”라고 적혀 있다. 남한산성 내 유명 해장국집이 있었는데 밤에 서울로 해장국을 올려 보내면 새벽 4시쯤에 한양도성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러면 통금 해제 시간까지 술을 먹던 양반들이 해장국으로 속풀이하고 귀가할 수 있었다.

1906년 천도교 기관지인 ‘만세보’에도 하나의 광고가 담겨 있다. ‘각 단체의 회식이나 시내·외 관광, 회갑연과 관·혼례연 등 필요한 분량을 요청하시면 가까운 곳, 먼 곳을 가리지 않고 특별히 싼 사격으로 모시겠습니다.’ 궁중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요릿집인 명월관이 교자상을 차려 배달한 것이다.

◆구전 통해 ‘복(福)’ 전해

이처럼 당시에 배달된 것은 입으로 먹던 음식이었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은 허기를 달래는 것도 있지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이와 관련해 우리 선조들이 배달한 또 다른 것도 있었다. 바로 입에서 입으로 전하고 귀로 들어먹던 ‘구전(口傳)’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구전을 통해 전해진 ‘복(福)’이었다. 보통 ‘잘 먹고 잘사는 것’을 복으로 여기는데, 여기에는 ‘장수’ ‘생명’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집안 곳곳에는 장수를 의미하는 것들이 참 많았다. 대표적으로는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열 가지의 사물을 담은 ‘십장생(十長生)도’를 그려 집안 곳곳에 놓았다. 그뿐만 아니라 베개나 밥그릇에 ‘복(福)’자를 새겨 넣었다. 자면서도 복(福)이 오길 바라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것이다. 또 아침에 웃어른에게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고 문안 인사를 드리기도 했다.

이로 보아 우리나라에 배달 문화가 계속 이어지고 발달한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배달의 형태가 조금은 변했지만, 그 속에는 선조들이 우리에게 주고 싶은 진정한 선물이 따로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