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가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연구실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중동의 역사부터 바이든 시대의 중동정책까지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3.20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가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연구실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중동의 역사부터 바이든 시대의 중동정책까지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3.20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서구의 시각이 아닌 이슬람 자체로 바라봐야”

“무함마드 후계자 문제로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려”

“현 중동 정세의 핵심… 이란 혁명 속 아랍왕조 불안”

 

“JCPOA 타결은 미국의 선택… 이라크 전쟁이 교훈”

“미국의 JCPOA 복귀 여부, 명분·실리 취하면 나설 듯”

“이란의 韓선박 억류는 동결자산 문제와 서운함 반영

“UAE, 동아시아 발전 모델 궁금해 해… 韓최적 파트너”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이슬람, 석유, 테러리스트, 전쟁, 여성차별 등 중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사실상 대부분 미디어에 노출된 단편적인 편린으로 선입견에 가까운데 그렇다고 해도 왠지 낯설고 생경하기만 한 ‘중동’, 우리에게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우리는 세속적이고 서구화된, 즉 미국이나 유럽권 문화에 익숙한데 강한 종교공동체인 이슬람권은 아직 생소해 익숙하지 않은데다 근저에 서구적인 시선이 깔려있기 때문이죠.”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동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알게 모르게 편견적 시선 속 선택적으로 끼워 맞춰졌다고 말한다.

‘그러면 중동에 대한 이해와 접근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인 교수는 “아직까지 낮선 부분이 많지만, 일단 이슬람 자체에 대한 인식을 서구의 시각이 아닌,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게 필요할 것 같다”면서 “중동이라고 하면 이슬람, 계속되는 전쟁, 여성차별 등 그려지는 이미지들이 있는데 분명 그런 측면이 있지만 전체는 아니다. 실제로 접해보면 다수는 선량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인 교수는 중동 정치 분야의 이론과 실제적 현실 정세에 두루 밝다. 그는 외교부의 싱크탱크인 국립외교원에서 15년 이상을 근무하며 국제정치 속 중동 정세, 미국의 중동정책, 지역 내 힘의 역학관계 등 중동 문제를 폭넓게 연구하며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 각처에 투입될 외교관 후보자들에게 중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단순히 지역 내 연구자에 그치지 않고 국제정치와의 관계 속 정교한 논리와 이론을 토대로 지역 현안을 발 빠르게 분석하고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등 중동 문제가 터져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주목을 받았다.

본지는 지난 20일 국립외교원에서 그를 만나 중동에 대한 이해를 비롯해 바이든 시대의 중동정책, 이란의 한국 선박 억류 문제 등 다양한 얘기를 들어봤다.

◆중동하면 수니파·시아파라는 용어를 빼놓을 수 없다.

뭔가 좀 복잡하게 들리는데 실상은 어렵지 않다. 권력 승계 다툼으로 인해 갈라진 두 개의 종파다. 이슬람의 양대 정파가 수니파와 시아파인데, 현재는 수니파가 90%, 시아파가 10%를 차지하고 있다.

성경을 따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들은 아브라함을 같은 조상으로 그의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에서 갈라졌다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있다. 아랍과 이슬람은 이스마엘의 후예로, 유대 기독교도는 이삭의 후예로 믿고 있다. 수천년 전의 얘기다.

그러다가 7세기 초 무함마드에 의해 이슬람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빠르게 성장했는데, 평등사상을 기초로 굉장히 쉬운 교리였던 점도 이유가 됐다. 하지만 아들이 없었던 최고 지도자 무함마드가 메카를 탈환하고 얼마 후 죽게 되면서 후계자 문제로 갈등이 시작됐다.

‘누가 승계하느냐’가 관건이었는데, 이슬람 공동체에서 가장 신망 있는 사람을 합의해서 추대하자는 기존 세력에 맞서 무함마드의 조카였던 알리, 즉 혈통을 중심으로 정통성을 유지하자는 세력이 형성되면서 분열됐다.

전통을 따르자고 하는 세력을 수나(수니파), 혈통을 따르고자 하는 세력을 쉬아트 알리(시아파=도당을 따르는 무리들, 알리의 추정자들)라고 불렀는데 이미 이슬람 공동체는 커져 있고 혈통 자체는 소수이다 보니 무력 충돌 과정에서 수니파가 주도권을 잡게 된다.

당시 수니파가 지금의 이라크 카르발라라고 하는 곳에서 시아파의 조상인 알리의 둘째아들 후세인 추종자들을 참살해버리자, 그때 이들이 호라산 (지금의 이란 동부) 쪽으로 도망을 가 자리를 잡게 된다. 원래 이 지역 사람들은 페르시아 전통종교 조로아스터교를 믿고 있었는데, 이들이 전도해서 시아파의 이슬람 국가를 만들어 버린다. 수니파가 아랍 지역의 주류이고, 이란은 비주류인 시아파의 나라가 된다.

◆현재 중동 갈등이 여기서 출발하는가.

사실 역사적으로 종파간 큰 문제는 없었다. 워낙 수니파가 다수였기 때문이다. 중요한 분기점은 지난 1979년 이란의 호메이니 혁명이었다. 이란을 통치했던 친미 ‘팔레비왕조’를 호메이니를 주축으로 한 시아파 성직자 세력이 무너뜨리고 이슬람공화정, 일종의 신정체제를 수립했던 사건인데, 갑자기 반미가 되고 왕을 쫒아내 버리니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레이트(UAE) 등 왕정 국가들은 굉장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란은 혁명을 한 이후 4년마다 대통령 등의 선거를 한다. 신정이면서도 공화정 성격을 가미한 독특한 체제다. 왕정국가들은 이란의 모델이 페르시아만을 건너 넘어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래서 더 미국과 손을 잡으려고 하는 상황이고, 결국 줄곧 적대관계를 맺어왔던 이스라엘과도 수교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현 중동 정세의 핵심인데, 이렇게 이란이 중동의 간판으로 뜨자 특히 오바마 미국 행정부 때 이란과의 악화된 관계를 회복시키고 차라리 끌어들여 길들이려고 했던 게 지난 2015년 7월 타결된 이란 핵합의(JCPOA) 모델이다.

◆이란 핵협상의 배경과 내용을 설명해 달라.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부터 이야기해보자. 당시 부시(아들) 행정부는 이라크가 대량파괴무기 (WMD)를 개발하고 있다는 이유로 전쟁까지 해서 정권을 바꿨다. 그러나 미국이 얘기한 민주적 이라크 수립에는 실패했다. 혼란은 이후 더욱 가중됐다.

또 전쟁으로 미군의 사망자가 5000여명에 육박한데다 1조 2천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지만, 지금의 이라크는 이란의 영향력이 훨씬 강하다. 게다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 삼아 알카에다 조직을 끝장낸다는 거였는데, 더 잔인한 IS가 등장해 나라를 세운다는 상황까지 왔다.

미국 국민들은 전쟁에 회의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란을 다루기 위해서는 전쟁 아니면 협상인데, 전쟁은 선택사항이 될 수 없게 됐다. 더군다나 이라크는 이란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나라인데도 정치적 안정화나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실패했다. 또 미국은 인구도 훨씬 많고 페르시아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란을 무력으로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았고, 아울러 반미정서를 누그러뜨리는 측면 등 복합적인 것들이 작용해 협상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이란 핵합의의 내용은 우선 농축 우라늄과 관련이 있다. 통상 저농축(원자력 연료용이나 의료용)은 우라늄235의 비율을 3.67%까지, 고농축(원자탄 등 무기 원료)은 20% 이상으로 높인 것을 말하는데, 이란은 20%의 고농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걸 3.67% 이하로 낮추는 것, 또 하나는 연구용·학술용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부로 배출, 그리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과 감시·감독 등이었다. 합의안의 핵심은 이란의 ‘브레이크아웃 타임(핵무기 제조에 걸리는 시간)’을 1년 이상으로 늘렸다는 데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조건들이 10~15년이 지나면 모두 자유로워지는 합의였다는 거다. 다시 말해 이 기간이 지나면 감시면제(일몰조항)가 된다는 것인데, 이 경우 이란은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갖게 돼 핵주기를 완성하게 된다. 역내에서 가장 핵개발에 앞선 나라가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이란 핵프로그램에 대한 제한이 자동 해제되는 일몰조항을 문제 삼았고, 일몰 기간 뒤엔 이란의 핵 개발을 막을 수 없다는 등 영구적 핵 폐기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JCPOA 탈퇴를 결정했다.

◆바이든 미국, 이란핵합의 복귀 가능성은.

지금 미국의 최우선 중동정책은 이란핵합의 복귀 문제다. 트럼프 행정부가 JCPOA를 일방적으로 파기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지만 현재 미국은 사실 2015년 7월로 바로 돌아갈 이유가 별로 없다. 이란의 경우 미국의 JCPOA 탈퇴 후 경제 상황이 계속 악화되는 등 체제 위기 국면까지 이어질 수 있어 시간이 갈수록 미국이 유리한 구조다.

바이든 미국은 분명히 JCPOA 복귀를 선언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다시 돌아가는 과정에서 위험 요소는 제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란이 선제적으로 핵합의를 지켜야 한다거나 이라크·레바논·시리아에 대한 도발 행위를 중지하라든지, 미사일 개발도 새로 JCPOA 후속 의제에 포함하겠다는 등이 좋은 예다.

이란도 미국의 공세 수위에 맞서 대응하고 있는데, 다만 양측은 서로 탐색전을 하는 정도로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어떻든 합의를 다시 복원한다는 점에서 서로 간의 목표지점이 일치하기 때문인데 명분과 실리를 취하는 선에서 협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이란 특사로 로버트 말리라는 사람을 임명했는데, 이 사람은 워싱턴에선 이단아에 가까울 정도로 친이란 인사다. 무슨 의미냐면 공식적으로 던지는 메시지가 있고, 덧붙여 ‘복심은 이거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핵심은 특사 임명에 있다고 본다. 두 개의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원칙은 이렇지만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하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볼 일이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가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연구실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중동의 역사부터 바이든 시대의 중동정책까지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3.20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가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연구실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중동의 역사부터 바이든 시대의 중동정책까지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3.20

◆국내 문제다. 韓선박 이란 억류 배경은 뭔가.

외교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미국과 연동돼 있는 문제로 일종의 한·미·이란 삼각관계를 치밀하게 다 고려하며 돌아봐야 한다. 얼마만큼 대미외교에서 동결자금을 빨리 풀어내느냐인데 미국에 어슈어런스(보장), 즉 이건 테러 관련 자금이 아니라 인도주의적인 부분이이라고 설득하는 게 관건일 것 같다.

70억 달러에 달하는 동결자금이란 건, 그간 한·이란 관계가 그만큼 좋았고 활성화돼 있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다. 규모가 워낙 크니깐 이란 입장에선 한국에 대한 일정 정도의 아쉬움, 서운함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이란이 환경오염 문제 등 법적인 이유를 내세웠지만, 이란 혁명수비대가 우리 배를 나포했을 때는 이 같은 속사정도 반영된 것으로 봐진다. 외교적 협상을 통해 빨리 해결됐으면 한다.

◆이란 경제 상황은 어떤가.

악화일로다. 지난 1979년부터 미국의 제재가 시작됐고 2002년 이후부터는 유엔 안보리 제재, 유럽연합(EU) 제재까지 3중으로 갔다. 40년 넘게 제재를 받으면서 저항경제를 유지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가지고 있는 내수 시장과 인력, 제조업 등으로 근근이 버텨왔다.

특히 최근 더 힘든 이유는 2015년 JCPOA로 경제가 개방되고 유럽자본이 들어오는 등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기대가 일순간 무너졌기 때문이다.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인데, 같은 수준이라고 해도 상대적으로 국민이 체감하는 고통은 훨씬 더 큰 것 같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민심이 흉흉해졌고, 결정적으로 환율이 급격히 오르며 외국 수입품의 가격이 폭등한 것도 원인이 됐다. 미국 역시 이 같은 이란 상황을 잘 알고 있고, JCPOA 복귀 과정에서 하나의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하려는 듯한 모양새다.

◆韓선박 억류 때 청해부대를 호르무즈해협에 파견하기도 했는데.

청해부대는 페르시아만에서 이어지는 호르무즈해협이랑은 상관이 없었다. 소말리아 앞바다에 워낙 해적들이 창궐하니깐 국제사회가 ‘대해적 퇴치작전’에 나선 것인데, 청해부대도 이때 들어갔고 아무런 문제가 될게 없었다.

문제는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위험해지면서다. 이 해협은 사실상 이란의 영향력이 크다. 오바마 행정부 때 JCPOA가 타결되면서 위협요소가 사라졌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해 뒤집어버리면서 다시 불거졌다. 제재를 복원한데다 여기에 미사일이 왔다 갔다 하니 이 해협 통과를 위해선 미국의 보호가 중요했다.

미국의 세금으로 다른 나라가 이익을 얻는 걸 참지 못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해협을 통과해 석유를 사오거나 물건을 파는 잘사는 나라들에 고통 분담을 요구했다. 함께 군사 작전하자는 건데, 한마디로 ‘다국적 호위연합체’에 참가하라는 요청이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받을 수 없었는데, 이란관의 관계도 있고 자칫 전쟁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독자적으로 가겠다고 밝혔고 이런 이유로 ‘대해적퇴치작전’에 파견돼 있던 청해부대의 작전 권역을 호르무즈 해협까지 확대하게 된다. 일본이나 유럽도 마찬가지다. 우리 선박 억류 때 급파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작용했다.

◆정의용 외교장관이 일본보다 먼저 UAE와 통화를 했다.

아랍에미레이트(UAE)가 아랍국가에서는 가장 글로벌한 도시를 갖고 있고, 특히 지도자들이 국가발전의 열망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동아시아의 국가발전모델이나 리더십을 많이 궁금해 하고 같이 가고 싶어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최적의 파트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직도 제약조건이 많다. 왕세자가 개혁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지만 아직 옛 관행이 지배적이다. 리더십, 비즈니스 관행, 국가 비전, 인프라 및 투자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UAE가 우리에게 최적의 파트너임에는 틀림없다

바라카 원전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프로젝트도 잘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양국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이기 때문에 어느 정부에 상관없이 오래갈 파트너다.

◆중동의 또 다른 고민과 중국·일본과의 관계는.

중동의 고민은 유가가 낮다는데 있다. 공급이 너무 많아진 것인데, 아무리 감산을 해도 가격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이다. 미국이 셰일을 개발하면서 공급자로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동 산유국들은 현재 많이 불안해하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한때는 유가가 150불 정도로 치고 올라갔다가 지금은 50불대고 조금 올라가야 60~70불대다. 다시 말해 150만원 벌던 사람들이 60~70만원으로 살아야 되는 거다.

이제는 예전처럼 석유로는 살수 없으니 그러자면 그간 모아놓은 종자돈을 가지고 투자를 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신재생에너지 등 석유를 통해 번 돈으로 새로운 생계 수단을 찾아야 하는 지경인데, 그래서 한국과 같은 나라들에 손을 내미는 것이다.

중동 석유를 사지 않을 수 없는 세 나라가 있는데 한중일이다. 특히 중국이 사들이는 물량은 어마어마하다. 자국에 소비하는 50% 이상을 중동에서 들여온다. 중동 입장에서는 최대의 고객이라 여러 가지 마뜩찮아도 파트너십을 가져가야 한다.

또 하나는 미국에 대한 레버리지 효과다. 미국이 중동 지역의 민주화, 인권 등을 계속해서 들먹이면 중국 쪽으로 붙겠다고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전처럼 미국은 중동산 석유에 의존하는 상황이 아니지만, 중동이 중국의 앞마당이 된다고 하는 건 큰 부담이다.

그들 나름의 독자적인 석유카르텔을 만들어 중국 산업과 연결이 된다면 중국주도의 독자적 가치사슬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중동 관리에 신경 쓰는 이유다. 사우디아리비아의 왕세자가 왕실에 비판적인 언론인을 살해의 배후라는 설이 파다해도, 미국이 비판은 하지만 일정한 선을 넘진 않은 것도 사우디 왕실을 미국편에 있게 하려는 것이다.

◆한국과의 관계와 중동의 미래는.

중동은 그간 석유만 믿고 살아왔는데, 상황이 달라졌다. 불투명한 미래에 마주하고 있다. 이제는 한발 앞서가기 위해 이스라엘과도 손잡는 상황이 됐다. 한마디로 변혁의 시기에 새로운 시대를 함께 열어갈 파트너십을 찾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지 사정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변화와 불투명은 높아짐에도 한국 사회가 한반도 문제, 미중관계에 관심을 쏟다보니 여전히 중동이나 아프리카, 중아아시아 등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너무 없다.

중동과는 교역 규모도 크고 건설, 플랜트 분야에선 독보적이다. 예전과는 달리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한국이 계속해서 10대 교역 국가를 유지하고 더 나아가려면 우리가 깊이 발을 담지 못하고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던 분야에서도 역량이 길러져야 한다.

한사람이 자기 인생의 주제를 정하고 연구를 하고 전문가가 되겠다고 나설 때는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세계 속에 들어가보는 게 맞다고 본다. 거기에 자기 삶을 한번 걸어보고 또 주장을 만들어내고 하는 것들이 먼 훗날엔 의미 있는 일이 될 게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가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연구실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중동의 역사부터 바이든 시대의 중동정책까지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3.20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가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연구실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중동의 역사부터 바이든 시대의 중동정책까지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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