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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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행정안전부에서 봄철을 맞이해 ‘안전을 지키자’는 내용의 대국민홍보에 나서고 있다. 코로나 시국 등 피곤한 시간이 계속되고, 최근 날씨가 포근해 가까운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관계로 산행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의도에서다. 통상적으로 산에서 발생하기 쉬운 등반사고의 33.7%는 실족추락이며, 17%는 등산인 각자가 지켜야 할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것이니 시기적으로 안성맞춤형 홍보라 하겠다.

해마다 행안부가 정부 재난 및 안전관리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각종 재난으로 인해 국민의 생명․재산 피해는 크다. 그것은 재난관리의 유형과 대상이 많은 데다가 실제적 재난 감소대책에서 중앙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국민들의 유기적인 협조가 계획처럼 수월하게 이뤄지지 않은 것에 원인이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해 얼마 전 행안부에서는 ‘2022년 재난안전예산 중점 투자방향’을 언론에 공개해 재난 안전 관리에 대한 국민인식을 돋우고 있다.

중점 투자방향을 보면, 지난해에 이어 국민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는 코로나19 감염병과 풍수해 등 사회 이슈화된 재난·안전사고를 반영한 7대 사업에 대한 중점 투자방향이 들어있는바, 그 내용들은 지난해, 올해의 방향에서 변하거니 크게 발전된 것이 없다. 특히 일곱 번째 항목인 ‘재난안전관리 역량 강화’는 약방 감초와 같은 항목이나 다름없다. 아마도 2000년대부터 나온 내용과도 유사하다고 할 것이니 재난에 대한 안전관리와 대처능력의 역량 강화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기본이지만 제도․운용면에서 획기적인 성과가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재난발생시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가고 대형재난이 들이닥치면 사회불안까지 횡행하다 보니 정부나 지도자는 재난관리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진다. 그러다가 재난이 발생하지 않으면 쉽게 재난의 무서움을 간과하게 되는바, 역대정부의 재난부처의 중앙조직 변화를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발견된다. 노무현 정부에서 재난대처를 잘 할 수 있도록 소방방재청을 만들었고, 이 조직은 화재, 구조 등에서 지금까지 국민의 든든한 파수꾼으로 신뢰 받고 있는 중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재난의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를 행정안전부로 부처 명칭을 고쳤다. ‘자치(自治)’에서 ‘안전(安全)’으로 개칭한 것이 무슨 대수이겠느냐마는 정부조직 중 총무처와 내무부를 합친 거대 중앙기관에서 ‘지방자치’를 부처 명칭에서 배제시킨다는 것은 상징성이 큰 ‘자치’ 배제와 직결되는 문제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민안전을 우선시하는 의미에서 ‘행정안전부’라 하였으니 명칭만으로도 국민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시킨 점은 의미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국민안전’을 내세웠고 2013년 조직개편시 안전행정부로 중앙행정기관 명칭을 바꿨다. 하지만 ‘국민안전’이란 이슈가 무색하리만큼 정부 출범 2년 차에 대형재난 세월호 사건이 터졌고, 이로 인해 국민들의 귀중한 생명이 희생됐다. 세월호 교훈을 거울삼아 다시는 이 같은 불행한 사고가 발생되지 않고, 재난 수습과 대처에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조직 정비에 나섰으니 중앙조직 재난부처의 대대적 손질이다.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면서 방재청과 해경청을 폐지시키는 대신 장관급 국민안전처를 발족시킨 것이다.

그 후 문재인 정부에서도 조직개편이 있었다. 재난관리 주무부처의 명칭이 다시 행정안전부로 개칭됐고 박근혜 정권에서 야심차게 출범시켰던 국민안전처는 폐지됐다. 장관급 국민안전처의 재난 업무가 차관급 재난안전관리본부로 신설돼 행안부 소속이 됐는데, 역대 정부에서 재난관리 중앙행정기관의 명칭은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돼 때로는 ‘행정’이 앞서거나 ‘안전’이 앞서는 등 변화를 거쳤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에서 안전 업무가 뒤로 밀리는 형세가 되기도 했다.

이같이 역대정부에서 재난관리 정부조직 명칭을 무수히 변경하면서까지 대응했지만 크고 작은 재난은 반복됐다. 대형재난이 발생하게 되면 후세 사람들에게는 그 정권의 실정으로 각인되고 있는바 김영삼 정부 시절 ‘육해공 재난’이 그 케이스이다. 구포열차 탈선, 목포 아시아나기 추락, 위도 페리호 침몰,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기억하기조차 싫은 대형재난들이 육해공에서 꼬리를 물었으니 당시 많은 국민 희생이 따라 사회불안마저 일어났던 것이다.

예고 없이 찾아드는 게 재난이라 하지만 사전 대비와 대처능력을 잘 갖추면 유사시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지도자들은 민심을 흉흉케 하며 사회불안을 야기시키는 대형재난이 자신의 임기동안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재난정책을 강화시키는바, 정부조직 등에서는 우리사회의 위협 요소 3대 유형인 소방, 산업안전 및 재난 분야에 대해 대비책을 마련해 운용하고 있다. 소방과 산업안전은 제도 정비와 시스템 운영이 잘되고 있다고 할 것이나 유독 재난관리에 대한 대비책은 겉모습만 요란할 뿐이고, 실제로 재난관리 대처․운영은 미흡하고 부족하다.

행안부에서는 재난 안전 관리의 역량 강화를 위해 교육·훈련 투자를 강화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려면 재난 안전 관리의 역량 강화는 당연하고 재난부서 공무원은 ‘방재안전’ 직렬로 충원돼야 하는데 실상이 그렇지 않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재난안전부서의 정원 7083명 중 방재안전직 공무원은 1134명(16%)에 불과하다. 경북도청 재난안전실의 경우 2019년도 현재 정원 83명 가운데 방재안전직 공무원은 5명뿐이며 나머지는 순환보직 인사로 채운 행정직 등 비전문가들이다. 정부가 말로만 재난 안전 관리 역량을 홍보하기보다는 방재능력 함양을 위해 재난 안전 부서에 방재안전직 공무원 충원부터 먼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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