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을 닷새 앞둔 25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사찰 관계자가 연등을 달고 있다. 정부는 지난 23일부터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조치를 시행, 종교시설 등에 대한 중단 권고를 해제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올해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코로나19 여파로 한 달 늦춰 음력 윤달 4월 초파일인 5월 30일 개최한다. ⓒ천지일보 2020.4.25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을 닷새 앞둔 25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사찰 관계자가 연등을 달고 있다. ⓒ천지일보 2020.4.25

“최고 1천만원” 조계사서 들은 사실 기초
본지 기자수첩‧사설로 고가 연등판매 비판
조계사 “상업적 판매 아냐” 본지 손배소
법원 “세속화 비판 기사… 공익성 인정”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한국 불교 대표 종단 대한불교조계종의 총본산 조계사(주지 지현스님)가 연등 가격 고지 및 판매 등이 일반인에게 상업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취지의 비판기사를 낸 천지일보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조계사가 항소를 포기해 해당 사건은 조계사 패소로 종결됐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연등이 설치되고 있다. 사진은 연등 가격표. ⓒ천지일보 2019.5.9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연등이 설치되고 있다. 사진은 연등 가격표. ⓒ천지일보 2019.5.9

앞서 조계사는 2019년 10월 28일 천지일보를 상대로 “연등 행사를 마치 상업적 이윤을 목적으로 그 취지를 악의적으로 왜곡해 기사와 사설을 게재했다”며 1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대상이 된 기사는 2019년 5월 9일 게재한 부처님오신날 올해 조계사에 달린 연등은 얼마치?라는 기자수첩과 2019년 5월 10일 게재한 18억 조계사 연등, 부처님오신날이 좋은 이윤가라는 사설이다.

기사에서 천지일보는 조계사가 연등 금액을 조계사 경내에 간판으로 세우고, 오가는 신도들과 시민들이 연등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행위에 대해 세속화하는 불교계의 모습을 비판했다. 본지 기자가 현장에서 직접 사찰 관계자에게 들은 바로는 비용에 따라 걸리는 위치도 모양도 달랐으며 연등 하나당 적게는 수만원, 많게는 천만원까지 그 액수는 다양했다.

조계종은 이에 대해 “원고는 신도들의 이름이 적힌 연등을 켜 경내에 달고, 신도들은 부처님에 대한 공경의 표시로 공양을 하는 것이지 상업적인 이익을 꾀하기 위해 돈을 받고 판매하지 않았다”며 판매가 아닌 보시라고 주장했다. 이어 “‘연등 가격표’라고 보도한 것은 연등 모연 문화를 상업적인 행위로 단정해 진정한 의미를 훼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연등이 설치되고 있다. 사진은 조계사 관계자가 기자에게 1000만원이라고 말했던 장엄등. ⓒ천지일보 2019.5.9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연등이 설치되고 있다. 사진은 조계사 관계자가 기자에게 1000만원이라고 언급한 장엄등 ⓒ천지일보 2019.5.9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01민사단독(부장판사 신현일)은 지난달 19일 1심 판결에서 “이 기사 및 사설이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이를 인정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며 “원고(조계사)의 주장은 더 나아가 살펴볼 것 없이 받아들이지 아니한다”고 판결했다. 소를 제기한 지 약 1년 3개월 만에 법원이 내린 결론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기사 및 사설의 전체적인 문맥과 핵심 내용은 연등의 위치와 모양 등에 따라 가격을 매기는 원고의 행위를 통해 불교의 세속화를 비판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기사의 내용은 그 보도의 목적에 비춰볼 때 충분한 공익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원고가 불교 사찰로서 갖는 상징성을 고려할 때 그 비판의 수인 범위는 넓어야 하고, 언론 자유의 폭 역시 더 넓어져야 한다”며 “연등의 종류 및 가격 등에 관해 다소 과장되거나 잘못된 표현 등이 일부 있더라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 기사의 내용이 진실한 것이라면 이를 용인해야 한다”고 했다.

취재 당일 본지 기자가 선배 기자에게 보낸 메시지. ⓒ천지일보 2021.3.22
취재 당일 본지 기자가 선배 기자에게 보낸 메시지. ⓒ천지일보 2021.3.22

연등 판매가 보시라는 원고의 주장에 대해서는 “연등의 종류와 각각의 가격을 명시적으로 표시해 놓았다는 점에서 신자들이 돈을 내고 연등을 다는 행위의 정확한 법률적 의미를 떠나 사회통념상 이러한 행위를 연등의 구매라고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다”고 봤다.

천지일보가 사실관계를 확인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연등 가격 제시 및 밝혀져 있는 연등의 현황 등 객관적 행위에 바탕으로 둔 점, 취재한 조계사의 실제 현장과 관련자들에 대한 진술을 바탕으로 한 점, 사설은 위와 같은 기사를 바탕에 둔 것이라는 점에서 기사 및 사설의 허위 여부를 판단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언론매체의 어떤 기사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해 불법행위가 되는지 여부는 그 기사가 일반 독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어떤 표현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더라도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에는 위법성이 없다”고 판시했다.

덧붙여 “언론·출판의 자유와 명예보호 사이의 한계를 설정할 때에는 표현된 내용이 사적 관계에 관한 것인가 공적 관계에 관한 것인가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며 “공공적·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돼야 한다”고 적시했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연등이 설치되고 있다. ⓒ천지일보 2019.5.9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연등이 설치되고 있다. ⓒ천지일보 2019.5.9

이번 사건은 원고 조계사가 항고기간이 지나도록 항소하지 않아 원고패소로 종결됐다.

앞서 이 사건은 조계사가 지난해 3월 9일 서울종로경찰서에 명예훼손(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혐의로 고소했으나, 경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 결론을 낸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소송과 관련해 조계사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언론에 대한 ‘언론길들이기’를 시도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었다. 기자의 견해가 담길 수 있는 견해기사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 제소를 하고, 1억원이라는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는 등으로 더 이상 조계사와 조계종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도록 압박을 가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연등이 설치되고 있다. 사진은 20만원에 달하는 극락왕생등. ⓒ천지일보 2019.5.9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연등이 설치되고 있다. 사진은 20만원에 달하는 극락왕생등. ⓒ천지일보 2019.5.9

한편 조계종은 불교계 언론 중 일부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언론에 대해 ‘해종언론’으로 규정하고 취재를 못하도록 막다가 지난 1월 15일 법원에 철퇴를 맞은 바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01단독(부장판사 신현일)은 이석만 불교닷컴 대표와 신희권 불교포커스 대표가 조계종과 조계종 기관지 불교신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3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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