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속에서 우는 매미

조석구(1940 ~ )

매미는 한여름에만 우는 줄 알았다
늙고 보니 매미가 줄창 귀 속에서 운다
무상한 세월 앞에서 늙은 희망 하나로
매아매암 매암 맴맴맴 운다
어떤 때는 쓰르람 쓰르람 쓰르라미가 되어
도둑맞은 가난으로 울기도 한다

옛 선인들의
이명주(耳明酒)를 애써 생각는다

 

 

[시평]

나이가 들면, 몸의 이곳저곳이 조금씩 망가진다.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저리고, 눈에 무엇이 껴서 침침하고, 소화도 잘 안 되고. 나이가 들면 이곳저곳이 하나씩 무너지는 느낌을 받는다. 칠십년, 아니 팔십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써 먹었으니, 아무리 좋은 재질이라고 해도 망가지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나이가 들고 기(氣)가 허(許)하여, 귀에서 이명(耳鳴)이 들린다. 마치 여름날 매미가 시끄럽게 울듯이, 귀에서 맴맴, 쓰르람, 쓰르람 하고 쓰르라미, 매미가 동시에 울어대는 소리가 들린다. 무상한 세월 앞에서 다만 늙어간다는 그 희망 하나로 울듯이 줄기차게 울어재끼는 귓속의 매미. 어떤 때는 쓰르람 쓰르람 쓰르라미가 되어 도둑맞은 가난으로 울기도 한다.

옛 문헌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나오는, 보름날 이른 아침에 청주(淸酒) 한 잔을 데우지 않고, 귀 밝아지라고 마시는 술 ‘이명주(耳明酒)’가 한 잔 생각나는 노년의 아침. 매미는, 쓰르라미는 오늘도 쉬지 않고 늙은 귓속에서 울어재낀다. 희망의 시간도, 가난의 시간도 모두 모두 지난날의 아련한 추억이 되어, 맴맴맴, 쓰르람, 쓰르람 하고 울어재낀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