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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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의 군 복무 제도는 이데올로기만큼이나 큰 차이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북한에서 군복을 입고 군대에 입대하는 날은 잠깐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조국을 통일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이것이 군 복무를 시작하러 떠나는 자식들의 작별인사다.

대한민국에서 군 복무는 말 그대로 의무복무제로 남성의 경우 군 복무 면제란 법이 정한 테두리를 벗어나기 어렵다. 북한도 징병제로 남성의 경우 의무복무제이지만 의무복무 적용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유명한 연예인, 스포츠 선수 등은 군 복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이들 몫까지 해야 하므로 자연 군 복무 기간이 길 수밖에 없다. 많은 북한 청년은 군 복무를 자기발전의 기회로 생각하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군대에 들어가야 노동당원이 되고 노동당원이 돼야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는 북한식 출세구조를 의미하는 것이다.

군사복무가 국방력 강화라는 순수한 의미가 아니라 청년들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정치조직으로 전락한 셈이다. 북한군의 복무기간이 장기화된 것은 1960년대 초반 이후로 보면 된다. 이때부터 이른바 경제건설·국방건설 병진이라는 병영국가 건설을 제창하면서 수많은 청년을 군대에 묶어두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 비해 군사 기술적 장비가 부족한 북한은 병력 수에서 우위를 지키는 것으로 군사적 비대칭 전력을 유지하려 한 것이다. 이후 군 복무 기간은 계속 늘어나 사병은 13년이었다가 지난 2003년 전민군사복무제 채택 후 남성은 10년, 여성은 7년, 특수부대는 13년으로 의무 복무기간이 정해졌다.

최근 북한은 군사복무 기간을 2년 단축하는 파격적 조치를 취해 주목받고 있다. 남성은 현 9~10년에서 7~8년으로, 여성은 6~7년에서 5년으로 단축됐는데, 이는 군 제대 인력을 경제 현장에 투입해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이행하기 위한 의도로 분석된다.

일단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북한군 복무기간 단축은 청년들에게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높다. 즉 청년들은 노동당 입당과 대학 추천이라는 유인요인으로 군복을 입고 싶어 했는데, 갑자기 군 복무 기간이 단축되면 이와 같은 모토가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군대 안에서 배운 거라고는 총 다루는 기술밖에 없는 젊은이들이 일찍 사회로 나가봤자 과연 어디서 무슨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10년 복무하던 청년이 제대해 사회로 나오면 보통 나이가 25살 내지 26살이 되는데 과거 28세 정도에 비하면 많이 젊어진 건 분명하다. 우리 한국에서는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을 막 졸업하는 나이라고 보여지는데, 북한 청년들은 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들어가면 사회와 많이 단절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군인들이 도로 공사와 아파트 건설, 농촌지원 등으로 노동집약적인 육체노동은 모두 배우지만 하이테크, 즉 고급 기술은 배울 기회가 전혀 없다. 바로 이것이 문제인 데다 현재 북한 경제는 성장을 멈추다 못해 마이너스 성장의 길에 들어선 지 오래돼 대관절 일자리가 없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은 청년들을 군복을 입혀 건설장으로 내모는 것과 아니면 작업복을 입혀 내모는 외모의 전환뿐인 동의적 발상인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청년들의 군 복무 기간을 단축하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일단 아까운 청년들을 장기간 군대에 잡아두는 기간이 단축되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이 단지 노동력을 갑자기 늘이는 것으로 경제발전을 시도한다면 이것 또한 오산이다. 먼저 경제개혁으로 경제구조 자체를 전면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해 젊은이들이 제대로 생활 조건을 보장받도록 만들고 노동력을 투입해야지 자칫 제대군인들을 무리로 사회에 진출시키면 거대한 저항 세력으로 될 수도 있다. 과거 1960년대 말 갑자기 사회로 쏟아져 나온 북한군 특수부대들이 탄광과 광산 등에서 폭동을 일으킨 사례를 북한 군인들은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런 행태가 반복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많겠지만 적어도 체제의 안정을 바란다면 군 복무 기간 단축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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