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해미순교성지, 국제성지 승격 소식에 기대감으로 ‘들썩’
[탐방] 해미순교성지, 국제성지 승격 소식에 기대감으로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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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지일보=조민희 기자]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두 번째 국제성지로 탄생한 해미순교성지 전경. ⓒ천지일보 2021.3.19
[천지일보=조민희 기자]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두 번째 국제성지로 탄생한 해미순교성지 전경. ⓒ천지일보 2021.3.19

“이름 없는 순교자 믿음, 전 세계가 인정한거죠”

국내 최초 교황청 공인, (단일) 성지
천주교 신자 전국서 끌려와
약 2천명, 이름도 없이 처형
132명 신자만 이름 남아

“외적 내적 차근차근 준비
앞으로 1~2년 시간 필요”
“서산관광개발, 불교 중심
대화하며 순례길 조성할 것”

[천지일보=조민희 기자]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두 번째 국제성지로 탄생한 해미순교성지 전경. ⓒ천지일보 2021.3.19
[천지일보=조민희 기자]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두 번째 국제성지로 탄생한 해미순교성지 전경. ⓒ천지일보 2021.3.19

[천지일보=김지현·조민희 기자] “해미성지의 국제성지 선포는 이름도 남기지 못한 순교자들의 신앙을 모범으로 인정하고 이를 전 세계에 알린 영광스러운 사건입니다.” 한광석 해미순교성지 전담 신부는 최근 이같이 말했다.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두 번째 국제성지가 탄생했다. 서산시 해미면에 위치한 해미순교성지다. 우리나라에 국제성지가 선포된 것은 2018년 ‘천주교 서울 순례길’ 이후 두 번째가 된다. 교황청이 공인한 단일 성지로는 국내 최초이며 아시아에서 2번째인 이곳을 천지일보가 찾아가봤다.

[천지일보=조민희 기자] 순교자의 유해가 있는 순교성지기념관. 왼쪽에 7층 높이로 솟은 망루가 보인다. ⓒ천지일보 2021.3.19
[천지일보=조민희 기자] 순교자의 유해가 있는 순교성지기념관. 왼쪽에 7층 높이로 솟은 망루가 보인다. ⓒ천지일보 2021.3.19

서산시는 교황청이 대전교구 해미순교성지를 국제성지로 지정하기로 결정했다고 지난 9일 밝혔다. 해미순교성지는 지난해 11월 29일 교황청이 승인한 국제성지로 지정됐으며, 대내외적 선포된 것은 내부 승인 절차 등을 거친 지난 3월 1일이다. 승인 교령도 전달됐다.

해미순교성지는 유명한 성인이 있거나 특별한 기적이 있었던 곳은 아니지만 이름이나 세례명을 남기고 순교한 132명의 신자가 기록으로 남아있다. 기록되지 않은 조선의 1800~2100여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천주교 신자들이 1800년대 병인박해 등 천주교 박해로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처형당한 곳이다.

[천지일보=조민희 기자]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해 시복한 인언민(마르티노)과 이보현(프란치스코), 김진후(비호) 복자상 앞을 순례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천지일보 2021.3.19
[천지일보=조민희 기자]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해 시복한 인언민(마르티노)과 이보현(프란치스코), 김진후(비호) 복자상 앞을 순례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천지일보 2021.3.19

해미읍성에 위치한 가게 직원인 김민섭(23, 남)씨는 해미읍성이 국제성지가 된 것에 대해 “축하하고 감사한 일이고 해미읍성뿐 아니라 국제성지인 해미성지로 인해 해미가 더 발전돼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구경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미성지 주변에서 농사하는 부부 중 남편인 김준원(가명, 60대, 남)씨는 “이곳을 자주 지나가긴 하지만 해미성지된 것도 정문에 있는 현수막보고 알게 됐다”며 주민으로 바라는 것으로는 “해미성지랑 주민들의 교류가 돼서 산지에서 나는 농산물들을 관광객들이 올 때 소비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서로 상생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천지일보=조민희 기자] 노천성당 전경. ⓒ천지일보 2021.3.19
[천지일보=조민희 기자] 노천성당 전경. ⓒ천지일보 2021.3.19

경남 의령군에서 자전거를 타며 해미성지를 탐방한 천주교 신자이며 바오로란 세례명을 가진 주공금(60, 남)씨는 “성지순례겸 오게 됐다. 해미성지에 천주교 사람들을 모아다가 박해해 목숨을 잃게 했는데 이름모를 순교자들을 생각하게 되니 더 마음가짐이 달랐다”며 만족해 했으나 “성지 안쪽에는 깨끗하게 돼 있는데 성지 주변환경시설들은 부합이 돼지 않아 성지 안의 느낀 기분과 나왔을 때의 밖의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고 했다.

해미성지 관계자는 “해미성지는 하느님 안에서 몸부림치며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그런 가난한 삶, 억울한 삶을 살았지만 하느님 보시기에 가장 위대하고 유명한 성인이라고 교황청의 이름으로 인정을 해준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성지 내 ‘진둥벙(죄인둠벙). 이 개울 한 가운데에 있던 웅덩이(둠벙)에 천주교 신자들을 꽁꽁 묶어 물 속에 빠뜨려 수장시켰다. (제공: 충남도청) ⓒ천지일보 2021.3.19
성지 내 ‘진둥벙(죄인둠벙). 이 개울 한 가운데에 있던 웅덩이(둠벙)에 천주교 신자들을 꽁꽁 묶어 물 속에 빠뜨려 수장시켰다. (제공: 충남도청) ⓒ천지일보 2021.3.19

그는 관광 개발에 대해서 “서산엔 불교가 성지처럼 된 곳이 많다. 우리 순례길 중에 가야성 중심으로 닦아놓은 길이 거의 불교 길이다. 정체성은 유지하되 이웃 종교간의 화합을 위해 불교도 존중하며 많은 대화를 해나갈 계획”이라며 “종교를 넘어 지역민들과도 교류해 지역의 농산물 등을 소개하며 지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 찾으며 상생할 것과 외지에서 사람들이 올 때 머무를 수 있는 숙소들이 지저분한 것이 아니라 청결한 숙박시설도 마련해놔야한다”고 했다.

이어 “세계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초대해서 알릴만한 귀한 장소라고 선포하는 장소가 국제 성지인데 해미성지가 단일 성지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국제 성지로 선포가 됐지만 아직 외국손님들까지 맞이할 준비가 안되어 있다. 서산시에서 보도자료를 내서 보도가 됐지만 저희가 생각할 때 아직 국제성지란 이름을 갖기에는 부족한 게 많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으로 “간판의 이름부터 영어, 중국어로 해놓아야 하고 건물도 손봐야 할 곳이 많기에 1~2년 정도의 준비시간이 필요하다. 외적보단 내적인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외적인 기본적인 것부터 해서 여기에 오시면 머물러 갈 수 있게 성경강좌, 신앙강좌 프로그램 등을 개설해 영적으로도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것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필요해 차근차근해나갈 계획”이라고 답했다.

해미순교탑과 순교자의 묘이다. 조선조 천주교 박해시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순교 선열들의 유해 일부를 이곳 해미 생매장터에서 발굴하여 1935년 4월 2일 서산 상흥리 공소 뒷산 백씨 문중 묘역에 모셨다가 순교자 유해를 교회적 차원에서 관리하며 성지 순례자들의 기도를 돕기 위해 다시 원위치에 옮겨 모셔놓은 곳이다. (제공: 충남도청) ⓒ천지일보 2021.3.19
해미순교탑과 순교자의 묘이다. 조선조 천주교 박해시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순교 선열들의 유해 일부를 이곳 해미 생매장터에서 발굴하여 1935년 4월 2일 서산 상흥리 공소 뒷산 백씨 문중 묘역에 모셨다가 순교자 유해를 교회적 차원에서 관리하며 성지 순례자들의 기도를 돕기 위해 다시 원위치에 옮겨 모셔놓은 곳이다. (제공: 충남도청) ⓒ천지일보 2021.3.19

기존 국제성지로는 역사적 장소인 이스라엘(예루살렘), 이탈리아(로마), 스페인(산티아고) 3곳, 성모 발현지인 멕시코(과달루페), 포루투갈(파티마) 등 20곳, 성인 관련 순례지 6곳 등이 있다. 국제성지 승인은 천주교 신자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의미 있는 역사문화유산의 공간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맹정호 서산시장은 “서산시의 해미성지가 국제성지로 지정된 것은 서산시의 숭고한 역사성을 인정받은 것과도 같다”며 “이를 잘 보존해 많은 시민이 편하게 찾고 역사를 바로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현재 천주교구가 조성 중인 해미순례길도 조성이 완료되면 ‘국제성지’로 포함될 전망이다. 대전교구는 오는 10월 해미순교 성지에 대한 국제성지 선포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천주교 100년 박해 역사 남아 있는 곳

당진, 서산, 홍성, 예산 등 충남 북서쪽 평야지대인 내포지방은 한국천주교에 있어 각별한 곳이다. ‘내포(內浦)’는 바다가 뭍으로 휘어들어간 부분으로 예로부터 물과 통하는 지역이라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 역할을 해왔다. 프랑스 사제들은 바닷길을 따라 내포지역으로 들어와 천주교 교리를 널리 퍼트렸다. 신자가 많았던 만큼 박해도 컸던 곳이다.

한국천주교의 초기 100년은 실로 박해와 순교의 역사였다. 최초의 박해사건인 신해박해(辛亥迫害, 1791년, 정조 15년)는 이번에 시복되는 윤지충과 권상연이 북경 주교의 가르침을 따라 제사를 폐지하고 조상을 상징하는 위패를 불살라 관헌에 체포돼 사형을 당한 사건이다.

그 후 한국교회 최초의 선교사인 주문모(중국)를 비롯해 이승훈, 정약종 등이 사형된 신유박해(辛酉迫害, 1801년, 순조 1년), 한국인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를 처형한 병오박해(丙午迫害, 1846년, 헌종 12년) 등이 있었고, 가장 오랫동안 전국적으로 지속됐던 병인박해(丙寅迫害, 1866년, 고종 3년) 때는 프랑스 외방전교회 출신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처형됐다. 이때 천주교 신자는 대략 8000명에서 1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되는데 그중 대부분은 무명 순교자이다.

과거 천주교 교인들을 매달아 고문하는 데 사용됐던 호야나무. (제공: 충남도청) ⓒ천지일보 2021.3.19
과거 천주교 교인들을 매달아 고문하는 데 사용됐던 호야나무. (제공: 충남도청) ⓒ천지일보 2021.3.19

천주교 박해는 내포 지역이 심했는데 당시 해미현에 군사를 거느린 무관영장이 지역통치를 겸한 막강한 권력을 남용해 중앙의 시책과는 무관하게 박해를 가했다. 충남 서산에 있는 해미성지와 해미읍성은 천주교 박해 역사가 남아있는 곳이다.

해미순교성지는 특히 생매장 순교지로 유명하다. 당시 내포지역 천주교 신자들은 사약, 몰매질, 교수형, 참수형 등을 당했는데 생매장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개울 한가운데에 있던 둠벙에 죄인들을 꽁꽁 묶어 물속에 빠뜨려 죽이는 수장 방법도 사용됐다. 해미성지에는 발굴된 유해를 전시해놓은 기념관과 진둠벙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 끌려오던 교인들이 “예수, 마리아”를 외치는 것을 사람들이 ‘여수머리’로 알아들어 ‘여숫골’로 불렀다는 이곳은 당시 충청도 각지에서 끌려온 천주교 신자 1000명 이상이 생매장 당한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중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는 132명에 불과하다.

근처에 있는 해미읍성(海美邑城, 사적 제116호)은 조선시대에 건축된 성 중에서 보존 상태가 상당히 양호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또 3000여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로 처형당한 순교 성지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성 안에는 천주교 신자를 가두고 고문했던 옥사가 남아 있다. 이 감옥터에는 손발을 묶이고 머리채를 묶인 교인들이 매달려 고문대로 쓰이던 호야나무가 지금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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