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종교자유탄압 특별관심국(CPC: Country of Particular Concern)’으로 지정됐다. 올해 4월 28일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는 북한, 중국 등 14개국을 CPC로 지정할 것을 국무부에 권고했다. 이처럼 북한과 중국은 종교를 탄압하고 차별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본지는 국내외 종교탄압의 현실과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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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권, 종교탄압 가장 심해

[천지일보=손선국, 최유라 기자] 중국은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 있지만, 중국 정부는 개신교와 가톨릭 신도에 대해 반드시 정부 통제하에 있는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나 중국천주교애국회 소속 교회와 성당에서 집회를 열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중국 기독교 신자 수는 ‘중국 기독교(5대주 미디어 출판사)’에 의하면 2010년 1억~1억 500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무허가 교회로 불리는 ‘가정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수가 6000만 명에 이른다는 설도 있다.

중국에서는 삼자교회 소속의 교인이 아니면 종교탄압을 받게 된다. 중국 공안당국은 올해 4월 8일 옥외예배에 참석하려던 서우왕(守望)교회 신도 15명 정도를 연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그달 22일 같은 이유로 동일 교회 신도 27명을 또 연행했다. 거기에는 80대 노파와 두 살배기 어린아이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일로 인해 가정교회 지도자 20여 명은 지난달 11일 우방궈(吳邦國)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에게 종교 자유 보장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보냈으나 이후에도 공안당국의 연행 조치는 계속되고 있다.

북한 정부의 종교 탄압은 심각한 수준이다. 북한은 여러 행사에서 김일성‧김정일의 초상화에 인사하는 것이 철칙이다. 한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보안당국이 북한 기독교인의 죄명을 김일성 주체사상을 믿지 않고 ‘예수’를 믿는 것이라며 이들은 이 땅에서 살 수 없다고 선고하자 제대군인 7~8명 정도가 나와서 교인 6명을 무참하게 때려죽였다”고 말했다.

◆신앙인 ‘카타콤’ 돌아보기

중국과 북한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신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초기 기독교 시대 기독교인들이 로마 황제의 박해를 피해 비밀 지하 묘지인 ‘카타콤’에서 숨어 예배를 드린 모습과 비슷해 ‘현대판 카타콤’을 연상케 한다. 마치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절정에 이른 로마 시대에 땅 속의 카타콤으로 들어가 믿음과 인내로 고난을 견뎌냈다. 카타콤의 구조는 지하 10~15미터 깊이에 폭은 1미터 미만, 높이는 2미터 정도로 전체를 종횡으로 뚫어 계단을 만들어서 여러 층으로 이어져 있다. 또 곳곳에 넓은 방이 있어 지도자급 묘실로 사용했고, 벽면에는 시체를 두는 공간을 일정한 규칙으로 설치했다.

로마시대 기독교인들은 카타콤에서 로마의 박해를 피해 예배드리다 잡히면 로마 원형광장에서 사자밥이 되거나 기름가마에서 참혹하게 죽어갔다. 이처럼 목숨을 걸고 신앙한 사람들에 대해 성경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히 11:35~37)”

박영환 기독교신학연구소장은 “중국과 북한 지하교회의 신앙 형태는 정부의 압제와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켰던 초기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유사성이 있다”며 “그들이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통한 부활과 영생의 산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기독교인의 모습

그렇다면 오늘날 남한과 북한의 신앙 모습은 어떻게 다를까. 북한은 9년 연속 종교 탄압국 1위로 꼽혀 세계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

원래 북한은 국내에서 기독교 정신이 강한 지역이었다. 특히 북한의 수도인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는 칭호까지 받았다. 이는 평양이 1866년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를 시초로 복음이 들어온 뒤 여러 명의 선교사에 의해 1907년 대부흥 운동이 일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조선은 사실상 일본의 식민통치 아래 들어가게 됐고 일본에게 ‘신사참배’를 강요당했다. 신사참배를 거부한 이들은 목숨을 잃기도 했다.

한 예로 고신파는 일본의 태양신(神)을 ‘우상’이라고 판단해 참배하지 않고 장로교에서 분리되어 만들어진 교단이다.

고신파가 세운 고신대 신학대학 강용원 교수는 “고신파는 다른 신에게 경배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킨 것”이라며 “북한이 현재 목숨을 걸고 신앙을 하는 모습이 예전 신사참배를 거부해 얼굴도 모르고 목숨을 잃은 많은 이들과 순교한 고신파 목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북한은 김일성 수하에 속하게 됐으며 북한에 있던 교회는 모두 불타 없어졌고,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사형에 처해졌다. 살아남은 북한 신자들은 이때부터 몰래 북한 당국의 눈을 피해 신앙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북한에서는 기독교인으로 발각되면 사형되거나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생활한다고 알려졌다. 정치범수용소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수용소 내부 실상은 가히 충격적이다. 수용소에서 수용자들은 식량부족, 노동학대, 고문 등으로 불구가 되거나 처참히 죽어가고 있다.

북한 선교전문가들은 북한 기독교인들이 목숨을 담보로 걸고 신앙을 하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갈망이 간절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북한 교인들은 타인 앞에서 예배, 성경책 읽기, 찬송가를 부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북한선교를 하고 있는 갈렙선교회 김성은 목사는 “북한에서 신앙생활은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라며 “사실상 친형제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조심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북한처럼 종교탄압이 심한 나라에서 신앙을 지켜가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도록 북한의 현실을 남한 기독교인들이 바르게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북한 선교전문가들은 종교탄압으로 고생하는 북한의 기독교인들을 위해 과장되거나 거짓된 정보를 흘리지 말아야 북한선교에 도움이 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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