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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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이 2021년 그래미 어워즈 베스트 팝듀오/퍼포먼스 수상에 실패한 것은 예견된 것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본질을 드러낸 바도 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실패가 아니라 앞으로의 발걸음이다. 2020년 8월 21일 ‘Dynamite’가 발매됐을 때, 국내에서는 혹평이 있기도 했지만, 북미 음악 시장에서는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Dynamite’로 인해 그래미 후보에 올랐다. 그런데 무난하고 새로운 것이 없다는 다이너마이트를 그래미 후보에 오르게 했던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이 현상이 일어난 배경은 바로 앞으로 방탄소년단의 행보가 어떻게 돼야 하는 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최근 브레이브 걸스의 역주행이 화제인데 방탄소년단은 그보다 훨씬 전에 세계적으로 역주행을 한 그룹이다. 브레이브 걸스(브걸)와 마찬가지로 유튜브 등 SNS가 큰 트리거(Trigger) 역할을 했다. 트리거는 격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총알이나 탄약을 쟁여두고 격발을 해야 폭발을 하거나 격발이 된다. 대중문화에서 총알이나 탄약은 폭발력 있는 콘텐츠와 이에 따른 팬이다. 이런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방탄소년단이나 브걸이나 핵심적인 마니아 팬들을 중심에 두고 있었다는 점이 같다. 그 때문에 트리거의 격발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 탄약의 핵심 성분 가운데 하나는 진정성이다.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 청춘들의 삶 속에서 희노애락을 노래하고 그들의 희망과 꿈을 반영했다. 국내에서는 대형 기획사가 아니기 때문에 받는 찬밥대우에 머물지 않았다. 언제 해체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그 불안을 SNS로 솔직하게 소통하고, 그 소통을 공유하는 소수의 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래하고 공연을 했다. 브걸도 이런 맥락 안에 있다. 음악적 수업이나 훈련이 없지만, 대중 취향의 많은 히트곡을 만든 용형의 브걸은 상대적으로 대형기획사 걸그룹에 비해 활동할 공간이 많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군부대 공연을 전전해야했다.

군부대 공연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을지라도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한해 두해 쌓였다. 하지만 군부대 공연을 수없이 한 그들을 받아주는 지상파 방송이나 음원 차트는 없었다. 그런데 수많은 군장병들은 이제 군을 제대하고 예비군이지만 총알과 탄약을 갖고 있는 존재들이 됐다. 유튜브의 채널에서 편집본이 방출되자마자 그들은 폭발한 셈이다. 아미 즉, 군대가 된 것이다. 어느새 그들은 군대에만 한정되지 않고 대한민국 전체를 좌우하는 히트메이커가 돼 있었다. 문제는 이제 지속성이다. 이것은 역주행의 신화 EXID에서 잘 보여졌다.

지속성이라는 점에서 방탄소년단은 세계적이다. 방탄소년단이 그래미 어워즈에서 수상을 못한 것에 대해서 지켜보는 관점은 대중성과 지속성이다. 그래미가 보수적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그들 외에 음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관심이 없는데 명분과 가치를 강박해 수상을 이끌어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미가 파워를 갖고 있는 것은 그만큼 대중적 즉 통속적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을 수 있다. 통속적일수록 음악 시장은 커지고 매출액은 늘어나고 그에 따른 수상도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무한히 통속적일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시간 싸움이다. 방탄소년단은 자기만의 유니버스를 유지하면서도 대중화를 멈추지 않는 가운데 실험적인 시도와 혁신도 끊임없어야 한다. 시간은 방탄소년단 그리고 케이 팝에게 있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한 말을 떠올릴 수 있다. “난 너에겐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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