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예의지국, 배려와 미덕도 다 옛말이련가. 최근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상대방에게 껌을 건넸다가 수차례 뺨을 맞은 할아버지 사건이 보도된 적이 있다. 피의자는 할아버지가 건넨 껌을 씹은 후 어지러웠다며, 껌에 무언가 다른 것을 넣어 좋지 않은 의도로 줬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 김해에서는 교복을 입은 채 술에 취한 고교생 여럿이 행인을 협박하고 출동한 경찰을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들 사건 외에도 학생과 교사 사이에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이라든가 이웃 간 층간소음 문제가 살인으로까지 번진 일 등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사건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대한민국이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리던 나라가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는 말처럼 이웃 간 소통의 부재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이미 오래라고는 하지만 층간소음 때문에 협박에 살인까지 저지른다는 것은 심각한 사회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로 마주칠 때마다 눈인사라도 하고 지냈다면 일상의 작은 불편은 서로 이해하고 참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하도 수상해 가까운 사람도 믿기 어려운 무서운 세상이 됐다고는 하지만 그 무서운 세상을 만든 것은 바로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 사이에 대화와 소통이 없다면 경계심과 불신만이 커져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지 모른다. 특히 층간소음 문제로 서로 불편하고 조심스러운 아파트 같은 경우 서로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한 번쯤은 더 참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마땅히 뛰어놀 곳 없는 아이들이 간혹 집에서 뛰어다니면 아래층에서는 아주 큰일이 난다.

매일같이, 시도 때도 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되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니 이웃 간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내 아이도 비슷한 경우가 생길 수 있을 텐데 다른 이들의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내 자신 스스로가 감정을 다스릴 수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내 아이와 내 아이가 아닌 아이, 내 것과 네 것이 너무도 분명해 내 영역 안에 있는 것이 아니면 용납하기 힘든 현실이 되어버린 이 시대가 참으로 안타깝다. 선의를 악의로 받아들이고 관용과 미덕, 배려를 찾아보기 힘든 작금의 대한민국이여, 다시금 동방예의지국임을 증명하는 나라가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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