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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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지역에는 얼마나 많은 고구려 유적이 있을까. 지난 1997년 서울 한강 아차산성 발굴로 고구려 성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지 20여년. 지금은 고구려 유적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점점 식어가고 있다.

국회에서 우리 고대 문화와 관련이 있는 중국의 홍산문화 혹은 요하지역의 청동기 유적에 대한 쟁점이나 고구려사 문제에 대한 토론이 있으면 이를 주최한 국회의원들도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중국에 대한 정치인들의 사대적 몸조심이 지나치다는 생각은 필자만의 생각인가.

한국역사문화연구회는 지난 2~3월 강원도 홍천지역의 고구려산성 조사 프로젝트를 실시해 왔다. 홍천군내 일부 문화계 인사들마저 여기가 고구려 땅이었나 하는 반문을 제기한다.

홍천은 동국여지승람 연혁조에 보면 분명히 ‘고구려 벌력천현(伐力川縣)’이었다고 돼 있다. 왜 벌력천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일까. ‘벌력’이란 글자를 해석하면 힘써 정벌을 한 곳이 된다.

중국 지안 광개토대왕 비문에 보이는 고구려의 백제 점령성 가운데 돈발성(敦拔城)이 나온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敦拔城’을 홍천 ‘벌력천’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伐(벌)’을 ‘拔(발)’로 해석한 것이다.

‘벌력’을 크다는 의미로 홍(洪)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신라 점령 이후에 경덕왕 대 한자를 차용하면서 홍천이라고 표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고구려식 지명인 ‘벌력천’이 표기돼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고구려식 지명이 실지 남아있는 곳은 드물다. 그러니까 19세기까지 벌력천이라는 이름이 존재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홍천의 고구려 유적은 동편에 우뚝 솟은 오룡산 지맥에 구축된 ‘대미산성(大彌山城)’으로 전해 오는 고대 성 유적이 주목되고 있다. 이 성은 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돼 있다. ‘대미’는 ‘대뫼’ 즉 큰 성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인데 신라 점령 이후 이곳에 대단위 부대인 신라10정이 주둔함으로써 ‘대미륵(大彌勒) 산성’으로 부르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 된다.

미륵은 바로 용화향도, 미륵선화에서 따온 것으로 화랑도를 지칭하는 것이다. 진흥왕~문무왕시기 10정을 지휘했던 장군들은 대부분 전쟁 경험이 많은 화랑도 출신이었으며 이들이 신라통일의 주축 세력이었다. 이 같은 사실을 감안하면 대미산성 일대가 바로 신라 10정의 주둔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유적 정방형에 가까운 포곡식 산성이며 여러 면에 치(稚)가 확인되고 있다.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들여쌓기로 정연하게 축조한 것을 봐도 고구려성임을 입증하고 있다. 요녕성에 있는 오녀산성, 태자산 산성, 평양 대성산성 등 여러 고구려 성곽의 축조 방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성은 능선으로 남산까지 판축으로 연결된 장성형태를 보이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이 산성은 영월의 왕검성(정양산성), 단양 영춘면의 온달성, 구 단양의 적성 등과 더불어 완벽하게 남은 고구려 성 유적으로 주목되는 것이다.

한국역사문화연구회 답사반은 성안에서 고구려계의 적색 와편과 무수한 신라 와편이 산란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별럭천변의 고대 토성지 전면 유적에서도 많은 와편, 토기가 산란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홍천에서 잃어버린 역사, 고구려의 비밀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홍천이 신라 땅이며 대미산성도 신라유적으로 보는 일반의 견해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홍천 대미산성의 대 고구려 비밀이 본격조사로 흔쾌히 벗겨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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